“만취, 환각상태 무자비 진압” 5·18 당시 교사 자필 수기 공개

  • 뉴시스
  • 입력 2019년 5월 17일 13시 36분


코멘트

80년 당시 고교 영어교사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목격담
은신 과정서 몰래 작성, 날짜별 광주 상황, 살육 현장 담아

5·18민주화운동 당시 교사가 항쟁 열흘을 생생하게 기록한 자필 수기에서 계엄군의 잔혹한 만행이 드러났다.

수기에는 당시 끼니를 굶은 계엄군이 환각제를 탄 술을 마신 상태에서 무자비하게 진압했다는 내용도 담겨져 있다.

5·18 39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박석무(77·당시 광주 대동고 교사)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5·18 광주 의거, 시민항쟁의 배경과 전개 과정’이란 제목의 수기 원본을 공개했다.

박 이사장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오월 항쟁을 일자별로 기록하고 발생 배경과 의의, 교훈 등 내용을 수기에 담았다. 1980년 6월 은신처에서 마무리한 수기는 200자 원고지 44쪽 분량이다.

박 이사장의 수기에 따르면, 신군부의 계엄확대와 민주인사·학생운동 지도부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소식에 전남대생 500여 명이 18일 오전부터 전남대 정문 앞에서 격렬한 투석전이 벌어졌다.

학생들이 도청 진출을 시도하다 전경대에 저지된 오후부터는 M16 소총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진압 작전에 투입됐다.

18일 오후 3시께 진압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아침·점심 식사를 모두 거르고 허기진 상태에서 환각제를 탄 소주를 마신 상태였다. 이 같은 내용은 당시 시민들에 의해 사로잡힌 군인들이 털어놓으면서 알려졌다.

계엄군들은 학생들이 붙잡히는 대로 신체 부위를 가리지 않고 개머리판으로 가격했고, 총에 꽂은 대검으로 찌르기도 했다. 연행된 학생들은 옷을 벗기고 팔목을 등 뒤로 꽁꽁 묶은 뒤 치고 밟았다.

이를 바라본 시민들은 울분을 삼키며 지켜봤고 계엄군의 잔학무도함에 치를 떨었다. 다음 날인 19일 아침부터 대학생들이 떼를 지어 몰려나왔고 시민들이 시위에 동참했다.

계엄군은 총칼로 또다시 유혈진압에 나서 광주시내는 아비규환의 전쟁터로 변했다.

계엄군은 도망가는 시민들을 뒤쫓아 상가·사무실에 마구 들이닥쳐 집기를 부쉈다. 임산부·아이·노인 가리지 않고 희생자가 늘어갔고, 시민들의 시위는 더욱 격렬해졌다.

계엄군은 집단 발포로 무고한 시민들까지 무자비하게 죽였고, 부상자를 실어다 준다는 이유만으로 택시 운전사들도 두들겨 맞았다.

박 이사장은 수기에서 항쟁은 27일 계엄군의 옛 전남도청 진압작전으로 막을 내렸지만, 오월 광주의 열흘 간 항쟁은 전 광주시민이 신군부의 헌정 유린과 계엄군의 만행에 맞서 정의롭게 일어선 ‘의거’였다고 평가했다.

박 이사장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최근 여러 증언을 통해 편의대의 공작으로 광주시민들의 시위가 과격화됐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무리가 있다”면서 “국민의 혈세를 받는 군인들이 시민을 학살하는 참상에 격분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나 저항권을 행사한 ‘의거’다”고 밝혔다.

이어 “5·18을 피부로 느낀 광주시민 누구라면 잇따라 불거진 5·18 왜곡·폄훼논란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새롭게 꾸려질 5·18진상조사위원회에 수기를 제공해 진상 규명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