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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멀고도 어려운 여행 : 머리에서 가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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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멀고도 어려운 여행 : 머리에서 가슴으로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9-05-15 03:00수정 2019-05-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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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대로 보려 한다’ 취임 2년 대통령의 현실인식
‘승패는 후반이 결정한다’ 전반기 돌아보고 오류 수정
하프타임 필요한 국정운영
고미석 논설위원
이렇게 보면 분명 앞 얼굴인데, 저렇게 보니 옆얼굴이 확실하다. 길거리에 걸린 어느 마술사의 공연 포스터는 동일한 사진에 저마다 다른 결론을 내리는 인간 심리를 엿보게 한다. 스스로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인간 뇌의 맹점이 거기서 드러난다. 습관화된 편견이나 관성에 착안해 사람의 속내를 맞히는 이른바 멘털리즘 마술쇼다. 두 가지 모습으로 보이는 광고 포스터에 담긴 문구. ‘당신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한다.’

취임 2년 대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현실인식이 또 논란이다. 온갖 지표가 아우성치는 암울한 경제상황도, 어떤 기준으로 봐도 실패한 인사검증도, 원망을 원망으로 되갚는 듯한 적폐청산도 대통령은 ‘거시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동의 못 한다’고 답했다. 이런 확신은 대관절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인간 무의식의 발로인가, 아니면 고된 현실에도 애써 낙관과 긍정 마인드를 강조하려는 의도적 배려일까. 어느 쪽이든 2년간 일방통행 노선을 걱정해온 여론에 대한 설득 과정은 애당초 생략한 듯 보인다.

동시에 이번 대담은 대통령에 대한 견고한 팬덤을 재확인하는 계기도 됐다. ‘진행자의 태도’를 꼬투리 삼아 분노를 쏟아낸 지지층이 단적인 사례다. 연예인 팬클럽의 일탈적 행보에서 종종 보아온, 인신공격 신상 털기 같은 기법이 동원됐다. 이 정도면 대통령에게 외려 누가 되거나 짐이 될 법한 상황이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자식도 제 뜻만 받아주는 것은 아이 망치는 지름길 아니던가. 궁극적으로 대통령을 지키는 것은 팬덤의 보호막이 아니라 국민의 지지란 사실은 달라질 수 없다.

이 와중에 여당 원내대표와 청와대 정책실장의 본심 고백도 ‘취임 2년’을 또 한번 부각시켰다.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들을 한다”는 관료 비판이 파장을 불렀으나 “2년이 아니고 마치 4주년 같다”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2년이 4년 같다’는 발언은 누가 할 소리인가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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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집권 3년 차. 전반전은 끝났다. 대통령은 2년 전 취임사에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등 멋진 신세계를 약속했다. 당초의 목표에 얼마만큼 가까워졌는가. 갈수록 주저앉은 지지율은 국민이 매겨준 중간 성적표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발상이 시급한 때에 이르렀다. 올해 선종 10주기를 맞은 김수환 추기경의 어록에서 혹시나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2003년 1월 1일자 동아일보 대담을 통해 소설가 최인호 씨와 만난 추기경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긴 여행이 무엇인지 아세요.”

“모른다”는 답변에 추기경은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지요.” 평소 추기경이 즐겨 했던 비유가 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 머리와 입으로 하는 사랑에는 향기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동화 자기낮춤이 선행된다.’ 사랑뿐이랴. 정의도 공정도 마찬가지 아닌가.

식상한 정치 말고 스포츠를 얘기한다면, 손흥민의 소속 팀이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의 꿈을 이룬 승부에서 한 수 배울 만하다. 전반 2-0으로 끌려간 상황에서 후반 3골을 연속 득점하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인생을 운동경기에 빗댄 밥 버포드의 책 ‘하프타임’에 따르면 하프타임의 목적은 상황을 점검하고, 경청하고, 배우는 것. 말하자면 전반의 실적은 어땠는지, 어떤 실수나 오류가 있었는지 평가해 후반기 개선 전략을 세우는 귀중한 시간이다. 국정운영도 하프타임 플랜을 적용하면 새로운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되 누운 풀처럼 스스로를 낮추라’는 불경의 말씀이 있다. 그런 바탕 위에서만이 남은 임기를 성공으로 이끄는 자세 전환도 궤도 수정도 이뤄질 터다. 승패는 후반에서 결정된다. 과거를 합리화하는 데 급급하다면 후반 반전은 기대할 수 없다.

어제 대통령은 체감 성과는 없어도 “총체적으로 본다면 우리 경제는 성공으로 나가고 있다”고 단언했다. 불현듯 취임사의 이런 다짐이 떠오른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큰소리치지 않겠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다.”

아직 3년 남은 것인지 불과 3년 남은 것인지, 선택지가 놓여 있다. 앞서 언급한 신년대담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얘기를 들려줬다. 대통령에 대한 좋은 말씀을 부탁받고 이런 얘기를 했단다. ‘부디 전철을 밟지 마십시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문재인 대통령#취임 2년 대담#현실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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