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다는 얘기 하고 싶었어” 그리운 엄마, 디지털 복원기술로 만날 수 있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30일 16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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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진짜 고맙다는 얘기가 하고 싶었어.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 말을 먼저 했다면 좋았을 텐데… 엄마 정말 고생 많이 했어요.”

아들은 울먹이며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건네지 못했던 ‘고맙다’는 응어리진 말을 꺼낸다. 어머니는 아들의 고백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다독거려준다. 말투 표정 동작 모두 살아 있는 듯 생생하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과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최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돌아가신 어머니와 재회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꿈같은 소망을 일본 NHK가 ‘부활의 날’이라는 프로그램(사진)에서 실현시켰다. NHK는 유명 코미디언 데가와 테츠로 씨(55)를 섭외해 어머니의 사진을 토대로 영화 ‘아바타’에서 사용한 모션캡쳐(배우의 몸에 장착한 센서로 움직임을 영상으로 구현하는 기술)를 사용했다. 생전에 즐겨 입던 옷을 입혀 친밀도를 더했다. 목소리는 성우가 녹음했고 데가와 씨 누나와 형의 감수도 받았다. 엄마와 아들의 대화가 절정에 이를 때 지켜보는 스태프들이 훌쩍이는 장면도 보여줬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는 주인공이 6년 전 잃은 아들의 생전 홀로그램 영상을 반복해서 보는 장면이 나온다. 지난해 한국에서도 홀로그램을 이용한 망자(亡者)와의 재회 프로젝트가 있었다. 고 최종현 SK그룹 전 회장이 20주기 추모제에 홀로그램으로 등장한 것이다. 생전 모습과 목소리까지 재현한 영상에 가족, 임직원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앞 사례처럼 사적인 그리움이 아닌 대중적 그리움도 있다. 세상을 떠난 팝 스타들이 디지털 기술을 타고 부활하는데 이것도 뉴트로 문화의 한 부분이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긴다’는 뜻이다. 레트로가 단순히 추억을 소환하는 복고풍이라면 뉴트로는 신기술을 접목해 재해석하는 문화다.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의 1980년대 공연을 디지털로 손 본 뒤 대형 홀로그램 프로젝터로 콘서트를 열어 팬들을 놀라게 한 사례가 그것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클라이막스였던 ‘떼창’ 장면은 세계 자원자들이 각자의 장소에서 녹음한 노래를 제작사가 모은 뒤 원음과 합친 결과물이라고 한다. 과거와 현재가 같이 호흡하는 셈이다.

약 20년 전 기자가 사진학과를 다닐 때만 해도 빛바랜 사진과 필름을 복원하는 기술 강좌가 꽤 인기 있었다. 당시 장래성이 좋은 사업이라 기대했는데 최근 ‘슈퍼노바’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화소마다 적절한 색을 입혀 품질을 높여주는 기술이다. 4월 11일 임시정부수립 기념일을 맞아 ‘빛바랜 사진 속, 빛바래선 안 되는 기억’을 슬로건으로 독립유공자들의 옛날 저해상도 원본 사진을 고화질, 고용량 사진으로 바꾸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이 기술은 희미하게 보이는 김구 선생의 모습을 매우 또렷한 이미지로 바꾸는 능력을 선보였다. 사진 영상은 물론 음원 데이터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하니 디지털 복원술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복원술은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과거 기억의 생기를 넣어준다. 기억을 찾고 싶어 하는 욕구는 결국 그리움이다. 기자도 7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제사 때 모인 삼남매는 가끔 꿈 이야기를 한다. “저번에 엄마가 꿈에 나타났다. 평소 좋아하던 떡을 드시고 있었다”는 누나의 말에 “왜 내 꿈에는 오시지 않을까?”라고 서운해 하며 일부러 잠을 더 많이 자기도 했다. 누나는 어머니의 평범한 일상 대화를 녹음 한 파일을 건네줬다. 여러 번 되풀이 하며 듣고 들었지만 그리움을 달래기에는 부족했다. 디지털 복원술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여전히 허전하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아이는 부모에 의지하고 스승을 만나 꿈을 키우고 성년이 되어 세상을 경험하다가 결혼해서 부부가 되고 다시 아이를 낳는다. 기념일 날짜순서가 자연의 이치처럼 정렬된 달이다. 나를 존재하게 해 준 이들을 지금 만질 수 있을 때 한 번 더 만지고 안아드리고 싶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때 한 번 더 표현하는 5월이 됐으면 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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