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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승헌]이젠 정의용, 서훈만으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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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승헌]이젠 정의용, 서훈만으로는 안 된다

이승헌 정치부장 입력 2019-04-23 03:00수정 2019-04-23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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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노딜에도 ‘북핵 투톱’ 올인, 북한도 북핵 라인 변화 주는데…
이승헌 정치부장
청와대가 4·11 한미 정상회담 이후 조용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공식 제안 이후 이렇다 할 북핵 메시지도 없다. 4·27 판문점선언 1주년 전후 보낼 것 같던 대북특사 이야기도 잠잠하다.

지금으로선 우리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굿 이너프 딜’을 거절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오지랖’ 운운한 상황이다. 왜 이런 국면이 벌어졌을까. 외부 요인은 우리가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내부라도 찾아야 한다. 기자는 이 중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이라는 ‘북핵 투톱’에 올인하듯 의존했던 문 대통령의 비핵화 해법이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2017년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외교안보 핵심이었던 정 실장과 서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비핵화 프로세스를 책임져 왔다. 이들의 역할과 비중은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정 실장을 두고 북핵 관련 정보의 입출구를 틀어쥐고 있다는 말이 정부 안팎에서 나온 지 오래다. 정 실장이 알려주지 않으면 모르는 정보가 많다는 얘기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올해 초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미 행정부 핵심 인사가 방한 기간 중 청와대를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고 언론에 보도됐다. 그런데 이 관계자는 정작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까지 만나고 갔다. 안보실에서 공유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서 원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지나 해스펠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과의 ‘스파이 라인’을 통해 지금까지 물밑 대북 접촉을 지휘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 생각을 읽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재료는 서 원장이 생산하거나 서 원장의 손길을 거친 것들이다. 게다가 서 원장은 정 실장의 서울고 후배. 최근까지 북-미 협상을 조율한 앤드루 김 전 CIA 코리아미션센터장도 서울고 동문이다. 서 원장은 앤드루 김을 “앤디”라고 부르며 호형호제한 지 수십 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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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니 외교부나 다른 부처는 북핵 문제에 있어선 두 사람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가 없게 됐다. 안보실과 국정원이 핵심 정보라도 주겠다고 하면 아이들이 산타클로스 기다리듯 서로 받아 가기에 급급했다.

그러나 하노이 결렬 전후부터 투톱에 대해 이상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정 실장은 직접 듣지 못했겠지만, 폼페이오 장관 등은 정 실장이 전한 김정은 메시지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말을 제3자에게 했다. 서 원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워싱턴 사람들이 늘었다. 여기에 하노이 이후 김정은에 대한 한미의 정보 격차는 확 줄어들었다. 지난해만 해도 김정은을 만난 ‘정의용-서훈 콤비’의 북핵 정보가 하나라도 중요했지만, 이제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김정은의 속내를 한국만큼 잘 알게 됐다.

지금의 교착 상태가 정의용, 서훈 두 사람의 책임이라고 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이들 투톱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채 하노이 이후 달라진 비핵화 판을 헤쳐 나갈 방도 역시 찾기 어렵다. 하다못해 김정은도 하노이 이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을 뒤로 물리고 최룡해 국무위 제1부위원장,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투톱으로 전환했다. 다른 사람을 찾기 어렵다면 다른 사람의 지혜라도 끌어다 써야 하는 상황이다. 적폐로 몰린 대미 라인을 복원시키라는 게 아니다. 진영을 떠나 오래 북핵 문제를 고민하고 미국을 지켜봤던 다른 전문가들 의견이라도 폭넓게 들어 보라는 것이다. 아직까지 문 대통령이 역대 외교부 장관이나 주미대사를 청와대로 불러 차 한잔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상황이 변했는데 내 방식이 여전히 100% 옳다고 고집한다면 남북 정상회담을 몇 번 한들, 크게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4·11 한미 정상회담#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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