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망가져도 봄은 오고’…온몸으로 난세의 혼돈 겪은 시인의 탄식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8일 16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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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망가져도 산하는 여전하여/ 성 안에 봄이 들어 초목만 무성하다.
시국을 생각하니 꽃을 보아도 눈물이 흐르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 소리에도 놀란다.
봉화는 석 달 내내 사그라지지 않으니/ 집에서 오는 편지는 만금의 가치.
흰머리 긁적이자 더욱 짧아져/ 아예 비녀조차 꽂지 못할 듯.’
(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感時花淺淚 恨別鳥驚心. 烽火連三月 家書抵萬金. 白頭搔更短 渾欲不勝簪.)‘ -’춘망·春望‘, (두보·杜甫·712~770)

안록산의 반군이 수도 장안 부근까지 쳐들어오자 당 현종은 사천으로 피신했고, 그 와중에 태자(숙종)가 황위를 계승했다. 소식을 접한 두보는 가족을 친척집에 맡겨둔 채 황제를 모시겠다는 일념으로 숙종의 행재소(行在所)로 향했고, 도중에 반군의 포로로 잡혀 장안으로 압송됐다. 당시 그는 미관말직인데다 명성도 높지 않았던 터라 곧 풀려났다. 시는 장안이 함락된 이듬해 봄, 사그라지지 않는 전화(戰火) 앞에 그저 무력하기만 한 시인의 탄식을 담았다.

무성한 초목, 꽃과 새는 으레 희망이나 아름다움으로 각인되지만 난세의 혼돈을 온몸으로 경험한 시인에게는 암울 그 자체다. 하여 시제 춘망은 봄 풍경의 조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시대의 봄‘에 대한 갈망이다. 시의 제3, 4구를 “시절을 생각해서 꽃조차 눈물 뿌리고, 이별이 한스러워 새조차 마음을 못 가눈다”고 의인화 해 해석하기도 한다.

다양한 소재를 다룬 두시(杜詩)는 1400여 수가 전해지는데, 그중에서도 시대 사회상이 반영된 작품이 단연 빼어나다. 두시를 시사(詩史)라 부르는 이유기도 하다. 이백이 명리에 초연하고 자유분방한 탓에 시적 기교나 규율을 엄격히 따지지 않은 데 비해, 두보는 투철한 유가 사상에다 성격마저 치밀해서 시작에 남다른 공력을 들였다. 이 때문에 두시는 뭇 시인들의 창작 교범이 되기도 했다. 이런 대조적인 시풍 때문에 이백과 두보는 각각 시선(詩仙)과 시성(詩聖)으로 불린다.

이준식 성균관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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