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길진균]“우리는 다르다” 인식이 “불법은 아니다” 불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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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정치부 차장
길진균 정치부 차장
지난달 28일, 매일 열리는 현안점검회의지만 이날 청와대는 평소와 달리 더욱 긴박했다. 이날 오전 각 신문에 보도된 김의겸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 때문이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해 각 수석실 비서관, 선임행정관 등 핵심 인사들이 속속 회의실로 입장했다. 김 대변인도 자리를 잡았다. 모두 그의 입을 쳐다봤다. 김 대변인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불법은 없었습니다.”

35억 원대 주식 투자를 한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나 청와대 관계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항변은 “불법은 아니지 않으냐”다. 이해찬 대표는 “법적으로는 문제없는 것”이라고 일축했고, 인사청문회에 참석한 민주당 법사위원들은 “위법성이 없다”를 반복하고 있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공직자가 주식 거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법이 없다. 몇억 원 이상 하면 안 된다는 기준도 없다. 기준도 없고 법도 없는데 단순히 주식 거래액이 많다고 부적격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했다.

야당 시절 민주당의 모토는 늘 보수세력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래서인지 문재인 정부는 출범부터 “우리는 다르다”를 외쳤다. 지난 정부에서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던 만큼 이들의 목소리는 상당수 대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집권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치명적인 오류가 잇따라 터지고 있다. “우리는 다르다”는 주장으로 같은 편의 지지를 받고 나아가 대중의 피를 끓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럴듯한 ‘말’과 다른 그들의 행동은 이제 보통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쌓고 있다. 김 전 대변인의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라든지 “정치, 정책은 ‘결과책임(Erfolgshaftung)’을 져야 한다”는 조국 대통령민정수석의 글 등이 대표적이다. 유전자까지 내세우며 “우리는 다르다”를 외쳤던 김 전 대변인은 16억여 원을 빌려 25억 원 상당의 건물을 샀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 때마다 반복되는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일 학술용어를 동원해 ‘Erfolgshaftung’을 강조했던 조 수석은 ‘민정수석 책임론’만 나오면 침묵한다. 보통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킬 감정적 반응엔 애초부터 둔감했던 건지, 아니면 도덕적 정치적으로 비판받을 행동을 해도 “우리는 다르기 때문에 예외다”라는 건지 의아할 정도다.

수없이 듣는 여권 관계자들의 이에 대한 항변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청와대와 여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패배 뒤 쓴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 등장하는 한 구절을 먼저 되새겼으면 한다.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선을 그어 편을 가르거나 우월감을 갖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최정호 조동호 전 장관 후보자의 낙마 이후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이미선 후보자 논란이 터졌다. “우리는 다르다”는 인식에 사로잡힌 인사 시스템으론 제2, 제3의 ‘이미선 논란’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어 보인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김의겸#부동산 투기 의혹#이미선 논란#인사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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