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계 드러난 ‘중재자’론 접고 당사자로 北 비핵화 이끌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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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15일 기자회견에서 “남조선은 미국의 동맹이기 때문에 ‘플레이어’이지 ‘중재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북-미 간 중재자 역할에 불만을 표출하면서 중재자론에 퇴짜를 놓은 것이다. 미국과의 엇박자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중재자를 자처하며 남북경협 확대를 추진해온 문재인 정부로서는 난감한 처지가 됐다.

문재인 정부는 그동안 남북관계 개선을 지렛대 삼아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를 이끌어낸다는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왔다. 하지만 주로 제재 해제와 남북경협 확대 등 북한 요구사항에 힘이 실리면서 형평성 논란이 계속 제기됐다. 하노이 담판 결렬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 없이 제재 해제는 없다고 거듭 밝혔는데도 문 대통령은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재개 방안을 미국과 협의하겠다며 엇박자를 냈다. 더욱이 문 대통령 주변 인사들은 하노이 회담 결렬이 미국 탓이라거나, 미국과 관계없이 우리 길을 가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니 한미 간 불협화음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지는 형국이다. 미국 조야(朝野)에서는 한국이 공정한 중재자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 정부 중재자론의 뿌리는 노무현 정부 시절 동북아 균형자론이다. 한국이 한반도를 에워싼 열강들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는 동북아 균형자론은 균형추 역할을 하기 위해서 열강들이 무시 못 할 수준의 군사력과 경제력 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망각한 패착으로 끝났다. 운전자를 하든, 중재자나 촉진자를 하든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협상 고비 고비마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튼튼한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중재자론은 결국 허상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이고 살아야 하는 북핵 위협의 제1당사자다. 이런 현실에선 북-미 협상의 훈수를 두는 중재자 역할만 하면 된다는 발상 자체가 환상이었다. 하노이 담판 결렬 이후 북한이 다시 미사일 발사 시위에 나서겠다고 협박하는 위기 국면이 도래했다. 새로운 상황에선 어설픈 중재자가 아니라 튼튼한 한미동맹을 토대로 비핵화 협상의 당사자로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미국이나 북한에만 맡겨놓을 순 없다.
#최선희#북-미 협상#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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