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달러 이은 제2 기축통화로 우뚝… 反유로 정서 확산에 균열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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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화 탄생 20년, 빛과 그림자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럽중앙은행(ECB) 건물 앞에 유로 화폐단위 및 유럽연합(EU)을 상징하는 노란 별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1998년 만들어진 ECB는 올해 4번째 수장을 맞이한다. 현재 EU 28개국 인구의 66%인 3억4000만 명이 유로를 사용하고
 있으며 유로 사용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경7200조 원이 넘는다. 픽사베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유럽중앙은행(ECB) 건물 앞에 유로 화폐단위 및 유럽연합(EU)을 상징하는 노란 별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1998년 만들어진 ECB는 올해 4번째 수장을 맞이한다. 현재 EU 28개국 인구의 66%인 3억4000만 명이 유로를 사용하고 있으며 유로 사용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경7200조 원이 넘는다. 픽사베이
달러에 이은 세계 두 번째 기축통화인 유로는 유럽경제공동체의 핵심 요소이자 유럽합중국의 꿈을 가능케 할 초석이라는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올해 1월 1일로 탄생 20주년을 맞았다. 사람으로 치면 약관(弱冠)에 해당한다. 비로소 갓을 쓰기 시작해 패기를 떨치기 시작할 때이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더 많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도 지난해 말 유로 20주년을 앞둔 기념 연설에서 “유로가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향후 20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양에서도 나이 40세인 불혹(不惑)에 이르러야 흔들리지 않는 건 마찬가지란 뜻일까.

유로가 아직은 흔들리는 상황에서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에선 반(反)유로를 기치로 한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당들이 등장했다. 이런 정당들을 통해 유로가 남유럽 대 북유럽, 저소득층 대 부유층 간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부정적 의견도 확산되고 있다. ‘통합 수단’이라던 유로는 왜 아직 자리를 못 잡고 ‘분열의 씨앗’이란 오명을 쓰게 됐을까. 20년의 세월 동안 유로에는 빛과 그림자가 교차했다.

○ “외형 성장” vs “텅빈 강정”

1999년 1월 1일 출범 당시 유로를 도입한 나라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총 11개국.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발트해 3국 등이 가세해 현재 19개국에 이른다. 유로 사용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1999년 7조6368억 달러(약 8544조 원)에서 현재 15조3904억 달러(약 1경7229조 원)로 2배가 됐다.

사용 인구는 3억4000만 명. 유럽연합(EU) 소속 28개국(5억1300만 명)의 66%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유로존 인구 중 38%는 전 생애에 걸쳐 오직 유로만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외형적 성장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실속. 출범 당시 100이었던 유로/달러 실효 환율(특정 화폐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며 흔히 ‘환율’로 통칭되는 명목 환율과는 다르다)은 2018년 11월 92.7로 하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 EU 통계국 등에 따르면 2018년 6월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유로 비중도 20.3%로 달러(62.5%)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기축통화 서열 2위지만 달러 패권에 맞서기에는 한참 부족하다는 의미다.

○ 남북 경제격차 급증

더 큰 문제는 유로가 유럽의 고질적 남북 갈등을 키웠다는 비판이다. 잘사는 북유럽과 상대적으로 낙후된 남유럽의 갈등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2009년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며 증폭됐다. 구제금융 조건으로 강력한 구조조정 및 긴축을 강요받은 ‘가난한 채무국’ PIGS(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와 독일을 필두로 한 ‘부자 채권국’의 상반된 이해관계가 서로 적대감을 한껏 키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8년 3조1225억 달러(약 3452조 원)였던 독일 GDP는 2017년 4조3456억 달러(약 4913조 원)로 1조 달러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이탈리아 GDP는 약 5% 줄었다. 생산성도 마찬가지.

OECD가 2017년 유로존 19개국 근로자의 노동시간당 실질 GDP를 분석한 결과도 비슷하다. 1위 아일랜드(86달러)부터 8위 핀란드(52달러)까지 생산성이 높은 8개국은 모두 북부에 자리했다. 게다가 이 8개국은 모두 1999년부터 20년간 생산성이 꾸준히 늘어난 나라들이다. 반면 최하위 포르투갈(32달러)과 그리스(30달러)는 2015년부터 3년 연속 생산성이 감소했다. 이런 1시간당 노동생산성 격차는 나라별 경제력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생산성 차이는 소득 격차로 이어진다. EU 통계국에 따르면 2007년 0.319였던 스페인 지니 계수는 2017년 0.341로 늘었다. 지니 계수는 한 국가 가계소득의 계층별 분배 상태를 측정할 때 활용된다. 이 값이 커질수록 소득분배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뜻이다. 이탈리아(0.321→0.327)도 마찬가지로 불평등이 커졌다. 같은 기간 벨기에(0.278→0.260)는 불평등이 완화됐다. 2017년 기준 PIGS 4개국의 지니 계수는 모두 유로존 평균(0.305)보다 높고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는 이보다 낮다.

실업률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 11월 기준 독일(3.3%)과 네덜란드(3.5%)의 실업률은 유로존 평균(7.9%)보다 낮다. 이탈리아(10.5%), 스페인(14.7%), 그리스(18.6%)는 평균을 웃돌았다.

○ 포퓰리즘 득세와 리더십 위기


유로로 인한 갈등은 이젠 국가 대 국가 수준을 넘었다. 지니 계수에서 확인할 수 있듯 각국 저소득층과 부유층의 양극화는 포퓰리즘 정당 난립의 토대를 제공한다.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다.

이탈리아 오성운동과 동맹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 스페인 포데모스…. 이념과 정강이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반유로를 주창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유로를 폐지하고 자국 통화로 돌아가자는 정도를 넘어선다. 심지어 EU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EU 탈퇴”를 외친다. 이들의 지지 기반은 주로 자국 내 저소득, 저학력, 1차 산업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반유로 주장에 쉽게 빠져든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EU 탈퇴(이탈렉시트)를 주장해 EU 전체에 큰 충격을 던졌던 오성운동 대표 출신인 루이지 디마이오 이탈리아 부총리는 7일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대를 적극 지지한다. 이들의 정치세력화를 돕겠다”고 했다. ‘노란 조끼’의 주축인 저소득층과 농민은 오성운동 지지층과 겹친다.

프랑스는 곧바로 내정 간섭이라고 발끈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부터 유류세 인하를 요구하며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시위대의 흥분을 가라앉힐 묘수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유로존 2위 경제대국 프랑스가 ‘한 수 아래’로 여긴 이탈리아 연립정부로부터 훈수를 듣는 현실 자체가 밑바닥부터 확산된 반유로 정서를 보여준다.

유로 탄생을 주도한 최대 경제대국 독일의 사정도 좋지만은 않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집권 장기화에 따른 피로감과 지지 기반 약화로 대안당의 반유로 공세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메르켈의 임기는 2021년 9월까지. 하지만 소속 기독민주당과 연정 파트너 사회민주당의 지지율이 이런 기류 속에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는 연정이 깨지고 조기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독보적 성장세를 구가하던 독일 경제도 위태롭다. 8일 독일 연방통계청은 지난해 11월 독일 산업생산이 전월 대비 1.9% 하락하고 11월 해외 산업주문도 한 달 전보다 3.2% 줄었다고 밝혔다. 독일의 성장 둔화로 지난해 3분기 유로존 GDP는 4년 최저치인 0.2% 성장에 그쳤다. 유럽 경제 싱크탱크 Ifo는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 유로존 GDP가 0.3% 증가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 새로운 20년의 과제

EU 집행위원장, 유럽의회 상임의장,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 EU 주요 기구 수장은 모두 올해 교체된다.

전문가들은 새 EU 지도부가 통합 경제 및 재무장관제 도입, 은행 동맹 및 자본시장 동맹 구성, 강력한 단일 금융감독기구 설립 등을 통해 ‘유로가 금융 및 재정위기에 취약하다’는 회의론을 누그러뜨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애초부터 상당한 격차가 존재했던 각국 경제의 기초 체력, 같은 통화를 쓰지만 재정은 각자 꾸리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란 뜻이다. 안토니오 타야니 유럽의회 의장은 “재정, 금융 및 정치적 통합을 바탕으로 한 통화 연맹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이런 통합기구를 설치하려고 해도 각국 내 반발과 반유로 정서부터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점. ‘통합 유럽의 상징’이란 유로의 존재 가치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지지를 보낸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유로바로미터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로존 인구의 유로 지지 비율은 74%로 반대(20%)를 압도했다. 반유로 정서가 극심한 이탈리아에서도 유로 지지자가 68%였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경제적 실험인 유로는 지난 20년보다 나은 20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날로 증폭되는 정치사회적 갈등을 유럽 국가들이 얼마나 슬기롭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 ‘미스터 유로’ 차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

핀란드-佛-獨 물밑경쟁… EU집행위원장 국적따라 갈릴듯


2011년 11월부터 8년간 유럽 통화정책을 이끈 ‘미스터 유로(Mr. Euro)’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올해 10월 31일 물러난다. 4대 유럽 경제수장 자리를 놓고 핀란드, 프랑스, 독일 등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12월 27일 경제 전문가 24명의 설문 조사에서 에르키 리카넨 전 핀란드 중앙은행 총재(69), 프랑수아 빌루아 드 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60), 프랑스의 브누아 쾨레 ECB 이사(50), 옌스 바이트만 독일 중앙은행 총재(51)가 후보라고 보도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는 리카넨 전 총재. 응답자의 3분의 1인 8명이 그를 유력한 총재 후보로 꼽았다. 핀란드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위원, ECB 이사 등을 지내 정무 경험이 풍부하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후 유럽 은행규제 체계를 재편할 때도 핵심 역할을 했다. 앙드레 사피르 벨기에 브뤼셀자유대 교수는 “다양한 행정 경험이 강점”이라고 했다.


2대 총재 장클로드 트리셰를 배출한 프랑스도 벼른다. 갈로 총재는 6표를 얻었다. 블룸버그는 그가 드라기 현 총재가 추진한 저금리를 통한 경기부양책을 꾸준히 지지했다며 ‘드라기 라인’으로 평했다. 프랑스 최고 엘리트를 배출하는 국립행정학교(ENA)와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모두 졸업한 후 재무부, 수출부 등에서 일한 정통 관료다. 유명 은행 BNP파리바에서 민간 경험도 쌓았다.

쾨레 이사도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졸업하고 재무부에서 일했다. 후보군 중 가장 젊지만 그의 ECB 이사 임기가 2020년에 끝나므로 총재를 맡을 수 있을지 규정 해석이 필요하다고 FT는 진단했다.

바이트만 총재는 선제적 금리 인상으로 물가 상승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력 주창하는 소문난 ‘매파’. 통화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국제통화기금(IMF),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경제자문 등으로 일했다.

그는 꾸준히 하마평에 올랐고 본인 또한 ECB 총재를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FT는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다. 우선 독일인이 ECB 총재 대신 EU 집행위원장에 오르기를 희망하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뜻이 확고하다. 또 바이트만 중앙은행 총재가 ECB 총재가 되면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구조조정의 고삐를 더 세게 조일 것이란 다른 회원국의 반발과 우려도 심상치 않다.

각국의 수 싸움도 관전 포인트. 올해는 ECB 총재를 포함해 EU 주요 기구 수장이 다 바뀌는 데다 한 국가가 수장직을 독점하지 않는 관례를 감안할 때 5월 뽑힐 EU 집행위원장의 국적이 ECB 총재도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차기 ‘미스터 유로’는 언제 탄생할까. 빠르면 유럽의회 선거가 있는 5월, 늦어도 6월 중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 후 각국 재무장관이 모여 후보자를 추천하고 유럽의회 승인을 거쳐 최종 임명된다. 드라기 총재도 2011년 5월 후보가 됐고 한 달 뒤 승인을 받았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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