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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서영아]객관적으로 본다는 것, 알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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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서영아]객관적으로 본다는 것, 알린다는 것

서영아 도쿄 특파원 입력 2018-12-22 03:00수정 2018-12-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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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아 도쿄 특파원
일본에서 취재하며 기사를 쓰다 보면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주관적 인식의 차이는 제쳐두더라도 양국이 알고 있는 사실 자체에 간극이 큰 경우가 종종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일본 신일철주금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한국 대법원 판결이 나온 다음 날인 10월 3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의 한 칼럼은 옛날 사진 한 장을 소개했다. 1973년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고로에 쇳물이 처음 흐르던 날, 현장에서 작업복 차림에 헬멧을 쓰고 만세를 부르는 당시 일본 후지제철과 야하타제철 사람들 모습이다. 두 회사는 통합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이 됐다.

가난한 한국은 1950년대부터 제철소를 만들려 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1968년 세계은행(IBRD)이 ‘한국의 종합제철소 사업은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는 보고서를 내면서 차관 도입도 좌절됐다.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책임을 맡았던 박태준은 결국 대일청구권 자금을 바탕으로 건설을 시작하기로 하고 일본 철강사들을 두루 방문해 건설자금은 물론이고 도면 설계부터 기술까지 도움을 끌어냈다. 수많은 일본인 기술자가 현장 인력이나 기술고문의 형태로 포항제철 건설에 힘을 보탰다. 이들은 이 경험담을 엮어 1997년 ‘포항제철의 건설 회고록―한국에 대한 기술 협력의 기록’이란 책자도 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물론이고 언론도 이런 얘기는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이들의 공적은 ‘한국이 독자 기술로 완성한 제철소’란 포장에 가려졌다. 그것이 국민의 대일 감정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했고 일본은 원죄가 있으니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생각도 작동한 듯하다. 관여했던 일본인들도 서운했을지언정 한국의 민족감정을 알고 있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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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 고로 앞에서 한국과 일본이 감격을 공유했던 것도 이제는 옛일이 됐다. 오늘날 양국 기록문서에 투영된 포스코는 큰 간극을 갖게 됐다. 일본어판 위키피디아에서 ‘포스코’를 치면 “1973년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대일청구권 자금 등에 의한 자본 도입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와 함께 설립. 야하타제철과 후지제철, 일본강관의 기술 공여로 급속히 발전해 설립 당시 1인당 국민소득 200달러 정도였던 한국의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나온다.

상대적으로 한국 언론에는 대체로 박정희와 박태준의 결단으로 추진돼 우리 기술과 땀으로 건설한 자랑스러운 국민기업이란 측면이 부각되고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됐다는 개략적 사실이 부가되는 정도다.

언론이 국민감정을 의식해 사실을 온전히 전하지 않는 사례는 일본에도 있다. 대법원 판결 후 일본 언론에서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억울한 사연이나 가족들의 고통은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다. 국제조약 법리가 강조되고 1965년 이래 쌓아온 양국 간 역사의 기초가 뒤집어진다는 우려만이 쏟아져 나온다.

기자는 고 박태준 회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일본, 특히 신일본제철에 대한 고마움을 많이 강조했다. 도움을 주고받은 당사자 세대는 사라지고 역사 기록은 생략되니 후세들은 영문을 모르게 된다. 이런 일들이 한일 간에 또 하나의 불신 요소를 쌓는 것 아닐까.

그런 사이 한국과 일본은 기술 분야에서 경쟁하는 라이벌이 됐다. 라이벌이란 단어는 강(river)에서 나왔다. 같은 강을 끼고 사는 이웃이라는 뜻이다. 건너편에서 더러운 물을 흘리면 이쪽에서 쌀을 씻을 수 없게 되듯 갈등이 없을 수 없다. 반면 홍수나 가뭄 등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야 할 일도 적지 않다. 도움 받은 것도, 피해 준 것도 서로 인정하고 성숙한 관계를 쌓아 나가야 할 시기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한국#일본#강제징용#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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