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걸크러시]〈1〉치마 속 쇠도리깨를 감춘 ‘다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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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이익을 탐하는 폐단이 끝내 예의염치를 돌아보지 않고 인륜을 저버리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참으로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조선 문신 송지양(1782∼1860)이 ‘다모전(茶母傳)’을 마치면서 외친 말이다. 다모는 보통 관아에서 잔심부름을 하거나 연회에서 흥을 돋우는 존재였지만 여성 경찰 역할도 했다. 남녀 구분이 확실했던 조선시대에 여성 범죄자를 다루기 위해서다. 다모는 천민이었기 때문에 기록이 많지 않아 실체를 알기란 쉽지 않다. 전언에 따르면 다모는 키가 5척(五尺)이 넘어야 하고 막걸리 세 사발을 단숨에 마셔야 하며 쌀 다섯 말을 번쩍 들 수 있어야 한다. 다모는 치마 속에 2척 정도 되는 쇠도리깨와 오랏줄을 차고 있다가 죄가 의심되면 언제나 도리깨로 문을 부수고 오라로 죄인의 몸을 묶어 올 수 있었다.

다모전은 1832년 가뭄으로 인해 금주령이 내려진 당시를 배경으로 한다. 관리가 고의로 술 빚은 이를 붙잡지 않으면 그 관리에게 죄를 물었다. 관리들은 벌이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해 백성들에게 몰래 고발하면 그 벌금의 10분의 2를 나눠주겠다고 했다. 벌금 20%를 나눠 주겠다니 당연히 은밀한 고발이 급증했다. 돈 때문에 이웃끼리도 감시했다.

다모는 아전들로부터 밀주를 담그는 것으로 의심되는 양반집을 수색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다모가 집 안에서 술독을 발견하자 그 집 노파는 놀라 기절했다. ‘가난한 살림에 남편의 병구완을 위해 밀주를 담갔다’는 노파의 말에 다모는 술을 아궁이 재에 쏟아 버리고 눈감아줬다. 이 사건에 대해 다모는 다시 차근차근 수사를 시작한다. 사건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모는 노파에게 술 빚은 일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판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노파가 그런 일이 없다고 하자 술 마신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노파가 시숙에게 술 한 잔 줬다고 했다. 시숙은 밀고 대가로 돈을 받기 위해 사거리에서 아전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를 발견한 다모는 그의 뺨을 때리고 침을 뱉으며 ‘네가 양반이냐’라고 꾸짖는다.

이런 행동과 말을 하층민인 다모가 할 수 있을까? 돈 때문에, 세상의 이익 때문에 법을 이용하기보다는 사람을 이해하고 감싸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신념의 표출이다. 이 장면은 법이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이지만 완고한 집행은 현실적으로 뜻하지 않은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모는 하층민이지만 오히려 양반보다 더 뛰어난 인간애를 보여준다. 그러나 다모는 밀주를 숨겨준 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주부(主簿)는 다모에게 곤장 20대를 처분한다.

흥미롭게도 화를 낸다는 글자 앞에 ‘양(佯)’자가 있다. 이 글자의 뜻은 ‘거짓’ ‘…인 체하다’다. 화난 척한 주부도 다모의 마음을 이해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주부는 “너는 의인(義人)이다. 내가 그것을 아름답게 여겨 상을 준다”며 돈 열 꾸러미를 상으로 준다. 참 괜찮은 법 집행관이다. 다모는 돈 열 꾸러미를 가난한 노파의 집 앞에 놓고 온다. 다모의 모습은 끝까지 ‘멋짐’ 그 자체다.
 
임치균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조선의 job史’에 이어 문학과 역사에 남은 여성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는 ‘조선의 걸크러시’ 연재를 시작합니다.
#다모#다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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