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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꺼! 반칙운전/3부]<4> 송두리째 바뀐 현준이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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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꺼! 반칙운전/3부]<4> 송두리째 바뀐 현준이의 삶

동아일보입력 2013-05-09 03:00수정 2013-05-0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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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 꿈 덮친 반칙車… “눈 뜨고 서는 법 다시 배우고 있어요”
해가 지면서 쌀쌀해졌지만 반팔 입은 현준이의 이마에선 쉴 새 없이 땀방울이 흘렀다. 2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서울사대부설초교에서 재활치료를 위해 운동장을 도는 현준이를 엄마가 뒤따라가고 있다. 현준이는 이 400m 트랙 한 바퀴를 30분 걸려 돌았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2일 오후 2시 40분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한 사설 재활치료센터. 작업치료사가 빨간색 연필 하나를 집어 들어 홍현준 군(11)의 눈앞에 가져갔다.

“스물 셀 동안 여기만 보는 거야. 할 수 있지? 하나, 둘….”

앞을 볼 수 있도록 엄마가 현준이의 양쪽 눈꺼풀을 손가락으로 들어올렸다. 왼쪽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를 악 물고 눈에 힘을 줬다. 오른쪽 눈동자는 눈앞의 색연필을 바라보는 게 쉽지 않은 듯 자꾸 왼쪽으로 돌아가려 했다. 카운트가 열여섯을 넘어갔다. 현준이는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온몸에 힘을 준 탓에 턱은 바르르 떨렸고 귓가엔 땀이 맺혔다.


스물. “으…” 소년은 짧은 신음소리와 함께 무너지듯 책상에 엎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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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2월 1일 ‘그날’

유달리 하늘이 파랗던 2010년 2월 1일 월요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서울대 사범대학 부설초교 앞 버스정류장. 이곳에서 버스 세 정거장 거리인 혜화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현준이가 마을버스에서 내렸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학교 옆 골목길을 걸어오는데 문구점 앞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도로에 정렬된 뽑기 기계와 게임기는 늘 인기였다. 모자 달린 옷을 입은 현준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무리 뒤에 쪼그려 앉았다.

인도와 차도가 따로 없는 학교 옆 어린이보호구역. 아이들 등 뒤로 차들이 부릉부릉 내달렸다. 현준이의 시선은 게임기 스크린에 꽂혀 있었다. 뒤에서 무언가 ‘쿵!’ 현준이의 머리를 쳤다. 유틸리티 차량이었다. 옷자락이 차에 걸리면서 그대로 바닥에 질질 끌려갔다. 주위를 지나던 사람들의 비명을 듣고서야 운전자는 차를 멈췄다.

30분 뒤. 엄마 윤미현 씨(당시 43세)가 직장에서 전화를 받고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달려왔다. 머리를 다친 아들은 침대 시트 여기저기에 피를 흘려놓은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엄마는 혼절했다.

의사는 ‘최악의 상황’을 입에 올렸다. 끔찍한 사고는 소뇌를 다치게 했다. 운동신경, 감정, 시신경, 지능을 담당하는 중요 기관이다. 하지만 의사는 신경이 몰려 있어 2차 피해가 우려된다며 뇌를 열고 수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상태에서 아이가 다시 건강해지는 기적을 바라야 했다.

가해 운전자는 여느 어린이 사고 운전자처럼 “사고 지점에서 아이를 보지 못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엄마는 사고 지점을 잘 알고 있었다. 늘 차와 아이들이 위태롭게 뒤섞여 다니던 곳. 그 비극이 아들에게 닥칠 줄은 몰랐다.

사고 두 달 만에 현준이가 의식을 찾았지만 눈을 뜨지 못했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했다. 1급 장애 판정이 떨어졌다.

○ 아들아, 다시 꼭 걸어야 한다

엄마는 직장을 그만두고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머릿속에는 한 가지 목표만 있었다.

‘아가, 반드시 널 다시 걷게 만들 거야.’

입원한 지 1년째인 2011년 초. 상태가 조금 호전되자 퇴원을 결정했다. 혜화초교 2학년에 복학도 시켰다. 휠체어 탄 현준이를 데리고 매일 학교와 병원, 재활센터를 오가는 강행군이 시작됐다. 주말도 없었다. 현준이는 사고 후유증으로 감정 조절이 안 됐다. 자주 화를 내고 격한 말을 내뱉었다.

“안… 할… 래… 죽… 고… 싶… 어!”

엄마는 단호하게 되받아쳤다.

“그래! 그렇게 죽고 싶으면 죽어.”

혹독한 시간이었다. 재활치료 받는 현준이는 몸에선 땀이 났고, 이를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속에선 피눈물이 솟구쳤다. 이런 피눈물과 땀이 흐른 덕분일까. 사고 2년 만인 2012년 1월. 현준이가 기적처럼 두 발로 혼자 섰다.

○ 영원히 바뀌어 버린 일상

매일 오전 7시면 윤 씨가 눈을 뜬다. 7시 50분에 현준이를 깨운다. 남편은 전날 사다 놓은 빵과 우유를 먹고 출근한다.

엄마는 현준이를 차에 태워 학교에 데려다 준다. 점심시간이 되면 다시 학교에 간다. 급식으로 나온 밥에 반찬을 얹어 입에 넣어준다. 물기 없는 반찬이 많은 날엔 현준이가 먹기 좋게 국에 말아 줘야 한다. 친구들은 밥을 먹고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차고 놀 시간이지만 현준이는 항상 식판을 앞에 두고 입을 오물거려야 한다.

방과 후엔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한다. 도구를 이용해 신체 기능을 향상시키는 작업치료를 1시간 동안 진행한다. 이후 재활치료기관인 서울 마포구 김태윤 아동운동발달연구소로 이동한다. 2년째 재활치료를 맡은 정미나 씨는 “처음 휠체어를 타고 왔을 땐 기어 다니지도 못했다. 1년쯤 지나서 걷기 시작했는데 폭 5m인 거실을 한 바퀴 도는 데 40분이 걸렸다”며 “지금 혼자 서서 걷는 건 기적”이라고 말했다.

또래 친구들이 영어 미술 태권도를 배우는 시간. 현준이는 눈을 뜨는 법, 두 발로 서는 법, 걷는 법을 이 악물고 연습해야 한다. 재활치료가 끝나면 해가 지기 시작한다. 곧바로 집에 갈 순 없다.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야 한다. 엄마와의 약속이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트랙을 현준이가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 뒤에서 보면 만취한 사람이 넘어질 듯 비틀거리며 걷는 것 같다. 그 뒤를 엄마가 따라 뛴다.

엄마와 아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꾼 그 지점은 지금도 바뀐 게 없다. 새로 생긴 안전시설도 없다. 아이들이 차 사이로 뛰어다니고 문구점 앞 도로에 쪼그리고 앉아 놀고 있다. 등 뒤에선 현준이가 사고당한 그날처럼 차들이 무섭게 내달린다.

도로교통공단 통계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동안 12세 이하 어린이 3028명이 현준이처럼 어린이보호구역에서 교통사고로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아이들은 늘 꿈을 꿉니다. 대한민국 최초로 화성을 밟을 우주인, 올림픽 시상식에서 애국가를 울려 퍼지게 할 체조선수, 화염 속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할 소방관…. 하지만 몇몇 어른들의 반칙운전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꿈을 키워보기도 전에 꿈을 접습니다. 축구를 하고 싶었던 아이가 두 발로 걷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과학을 배우고 싶었던 아이가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기 위해 눈물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미술을 배우고 싶었던 아이가 점자책 읽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운전할 때 마주치는 모든 아이가 ‘내 아이’라는 마음으로 지켜주세요.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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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운전#홍현준#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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