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 따라 몽골 간 이태준, 동의의국 세워 독립운동 거점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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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1운동 임정 100년, 2020 동아일보 창간 100년]
근대 의술 전파… ‘여래불’로 불려
애국지사들에 숙식-교통편 제공, 김규식 파리行 자금 지원도

김규식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가기 전 몽골에서 활동했다. 독립투사들을 양성할 비밀 군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해서였다. 1914년 그의 몽골행에는 세브란스의학교 출신 이태준(사진)도 동행했다. 이태준은 세브란스 재학 시절 안창호의 권유로 비밀결사 신민회의 자매단체였던 ‘청년학우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국내 조직에서 약속한 자금이 오지 않으면서 군관학교 설립은 무산되고 만다. 그 대신 몽골에 독립운동 거점이 마련된다. 이태준이 1914년 고륜(울란바토르)에 병원 동의의국(同義醫局)을 열고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태준은 근대적 의술로 삽시간에 몽골인들을 사로잡았다. 특히 몽골인의 70∼80%가 감염돼 있던 성병을 절멸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다. 이를 계기로 그는 ‘신인(神人)’, ‘극락세계에서 강림한 여래불(如來佛)’로 불리며 큰 인기를 누린다. 몽골의 왕 보그드 칸은 그를 주치의로 임명하고 훈장까지 준다. 김규식도 1918년에는 자신이 속한 독일 회사 지점을 고륜에 개설하고 현지에 정착한다. 이때 김규식을 따라온 사촌 여동생과 이태준이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다.

이태준은 동의의국을 통해 각지의 독립운동단체와 연락을 주고받고, 애국지사들에게 숙식과 교통편을 제공한다. 또 김규식이 파리강화회의 대표가 되자 독립운동 자금 2000원을 지원한다.(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이태준은 독립운동단체 한인사회당의 비밀당원과 의열단 단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1920년 레닌 정부가 상하이 임시정부에 지원을 약속한 독립운동 자금 200만 루블 가운데 1차분인 40만 루블 상당의 금괴를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하이로 옮기는 일을 돕기도 했다. 또 그해 중국 베이징에서 의열단장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했다. 이태준은 자신의 운전사이자 헝가리 출신 폭탄 제조 기술자인 마자르를 의열단에 소개시켜 주기 위해 고륜으로 돌아갔다가 1921년 2월 몽골을 점령한 러시아 백군부대에 붙잡혀 총살형에 처해진다.(‘의사 이태준의 항일독립운동과 몽골’)

현재 울란바토르의 대표적 관광지 자이승 전승탑 부근에는 이태준기념공원이 조성돼 있다. 한-몽 친선의 상징 인물이 된 그를 기리기 위해 양국 정부와 교민들이 노력한 결과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3·1운동 100년#김규식#이태준#몽골#동의의국#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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