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언어를 오간 삶… 나는 20년간 나를 통역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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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 최성재씨 美誌 기고서 소회 밝혀

“2019년 4월 봉준호 감독의 전화 인터뷰를 통역하다 그가 언급한 영화 제목을 놓쳤을 때 다른 사람이 (통역) 자리를 차지하겠구나 싶었다. … 어느새 오스카 트로피 6개로 여정이 끝났다.”

영화 ‘기생충’의 오스카 캠페인 과정에서 봉 감독의 절묘한 통역사로 찬사를 받은 최성재(샤론 최·사진) 씨가 19일 미국 연예 주간지 버라이어티에 지난 6개월간 이어진 여정의 소회를 담은 기고를 보냈다. 기고에서 “불면증과 문화 차이를 극복하려 평생 본 영화와 봉 감독의 명확한 표현에 의존했다”고 밝힌 최 씨는 “그럼에도 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자신의 성공이 운으로 얻어졌다고 생각해 불안해하는 심리)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유일한 치료제는 “무대에 오르기 전 10초간의 명상과 ‘사람들은 내게 관심 없다’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어렸을 때 2년간 미국에서 산 경험이 자신을 한국인이기에는 너무 미국적이고, 미국인이라기에는 너무 한국적인 ‘이상한 혼종’으로 만들었다는 최 씨는 “두 가지 언어를 오가는 것은 내 삶의 방식”이라며 “나는 20년간 나를 통역했다”고 했다.

“보통 사람이 1만 단어를 안다면 2개 언어 구사자는 각 언어의 5000단어만을 안다고 한다. 평생 두 언어 사이에서 애를 먹었고 그래서 시각언어를 지닌 영화에 빠졌다.”

미국의 저명한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홀리혹 하우스’에서 잡지 뉴욕매거진과 한 인터뷰를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봉 감독이 직관적으로 (홀리혹 하우스라는) 공간을 읽어내는 모습은 카메라, 공간, 캐릭터라는 ‘영화의 삼위일체’에 대한 마스터클래스를 듣는 듯했다.”

그는 “당분간 노트북과 씨름하며 보낼 것 같다. 내게 남은 유일한 통역은 나 자신과 영화뿐”이라며 글을 마쳤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최성재#샤론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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