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과 박쥐[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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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왕푸징의 ‘간식 먹거리’ 골목인 샤오츠제(小吃街)를 찾는 외국인들은 불가사리, 작은 전갈, 큰 전갈, 해마, 도롱뇽, 메뚜기 꼬치구이를 보고 깜짝 놀란다. 하지만 광둥성 등 남방 요리 본고장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곰발바닥, 모기눈알, 비둘기, 들쥐 요리 등 ‘엽기’가 끝이 없다. 살아있는 원숭이를 묶어 놓고 생골을 파먹는 데는 기겁을 할 만하다. 후베이성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은 이런 ‘몬도가네’와 무관치 않다.

▷우한은 중국 대륙 한가운데이자 양쯔강 중하류에 있는 도시다. 인구 약 1100만 명으로 항공 철도 등 교통 허브이며 대학 도시이기도 하다. 여름철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돌고 습도가 높아 중국의 4대 화로(火爐) 중의 한 곳으로 불리는 우한에도 온갖 엽기 요리가 성행한다.

▷‘우한 폐렴’의 진원지 화난시장에서는 오소리, 여우, 산 흰코사향고양이, 악어, 대나무쥐, 기러기, 뱀, 코알라 등 야생동물이 거래됐다. 이 중 특히 뱀과 사향고양이는 박쥐의 바이러스를 옮기는 2차 숙주로 의심받는다. 사스는 사향고양이, 메르스는 중동의 낙타가 원인이었지만 사실은 사향고양이와 낙타가 박쥐에게서 바이러스를 옮겨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스와 메르스 외에도 21세기 들어 지구촌을 흔든 니파 바이러스, 에볼라, 마르부르크, 헤니파 감염병은 모두 박쥐가 1차 숙주였다.

▷이번 우한 폐렴의 유전자도 박쥐 내부의 바이러스와 96% 일치한다. 음습한 동굴에서 살아 온몸에 기생충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박쥐 몸속의 바이러스가 박쥐를 잡아먹은 2차 숙주를 거쳐 사람에게 전염된 것이란 추론이 나온다. 박쥐를 탕이나 튀겨서 직접 요리로 먹기도 한다고 한다. 박쥐가 인간에게 질병을 옮긴 것은 1930년대 흡혈 박쥐가 광견병을 옮긴 것이 처음이다. 지금도 미국이나 남미에서 광견병은 주로 박쥐 때문에 걸린다고 한다. 박쥐 몸에는 최대 200개 바이러스가 있지만 박쥐 자신은 질병에 무적이다. 특유의 면역체계 때문이다. 수평 비행속도가 무려 시속 160km에 달해 날 때 체온이 올라가면서 면역계가 활성화된다.

▷돌기 모양 입자 표면이 왕관을 연상시켜 라틴어 왕관을 뜻하는 ‘코로나’에서 이름을 따온 코로나바이러스가 사스와 메르스에 이어 인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인간 병원체의 58%는 인수공통전염병이다. 야생동물과 접촉하거나 식용으로 하면서 야생동물 속에 있던 병원체가 넘어오면서 전염병을 유발한다. 인간의 탐욕과 자연환경 파괴가 억제되지 않으면 바이러스의 역습이 계속될 것이라는 경고가 아닌지 되새겨 봐야 한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박쥐#야생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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