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南北美 정상 ‘거짓 친분’ 2년… 이제 환상서 깨어날 때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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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4일 밤 인민군 총참모장 명의의 담화를 통해 “만약 미국이 우리를 상대로 그 어떤 무력을 사용한다면 우리 역시 임의의 수준에서 신속한 상응행동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필요하다면 북한에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군 수뇌부를 내세워 기다렸다는 듯 반격에 나선 것이다. 담화는 특히 “우리 무력의 최고사령관(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이 소식을 매우 불쾌하게 접했다”고 했다.

북-미 정상 간 개인적 관계는 그간 비핵화 협상의 판을 깨지 않으면서 대화 국면을 이어주던 유일한 명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이래 늘 김정은과의 친분을 자랑했고, 이번에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 가능성을 언급할 때조차 “김정은과 나는 관계가 매우 좋다. 신뢰도 갖고 있다”고 했다. 북한도 대미 담화에서 “(두 수뇌 간) 친분관계가 굳건하고 신뢰심이 여전하다”며 정상 간 직거래를 요구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언필칭 신뢰 관계도 균열이 가고 있다. 북한이 밝힌 김정은의 불쾌감은 그 시작일 것이다. 자신의 계획표대로 ‘연말 시한’에 맞춘 대미 공세에 나서면서 그간 극한대치를 막아주던 그 친분마저도 거추장스럽게 된 것이다. 북한은 이미 문재인 대통령에겐 ‘오지랖 넓은 중재자’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 같은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지난해 문 대통령에게 보여준 최상의 대접은 김정은의 변심과 함께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북-미 간 ‘기괴한 브로맨스’도 머지않아 끝나갈 조짐이다. 애초부터 있었는지도 의문인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그런 관계의 기반이었지만, 김정은은 이제 그것마저 부인할 태세이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북-미 정상회담 이벤트가 진행되면서 북한은 핵 무기고를 늘릴 충분한 시간을 벌었다. 핵실험만 멈췄을 뿐 핵연료 공장을 계속 가동하면서 핵탄두 숫자를 늘렸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더욱 고도화했다.

북핵 위협은 이제 더욱 커지고 정교해졌다. 그런 만큼 ‘새로운 길’을 내세운 북한의 도발 수위는 2년 전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거기에 정상 간 이벤트용 친분관계도 끝나면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 그런 김정은에 한미 정상이 마냥 미련을 두고 매달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위기 땐 그에 맞는 새로운 대처가 필요하다. 언제까지나 어르고 달래며 끌려갈 수는 없다. 도발하면 응징한다는 결기부터 가다듬어야 한다.
#남북관계#북미관계#비핵화#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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