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 봉인된 진실 해제할 때[오늘과 내일/정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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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층의 공권력 남용 여부… 검찰이 진상 낱낱이 밝혀야

정원수 사회부장
정원수 사회부장
“지금은 말할 단계가 아닙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전직 직원 A 씨는 올해 상반기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해 이렇게 말하며 사실상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고 한다. 당시 A 씨는 유재수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청와대 감찰 무마 고발 사건을 조사받기 위해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처음 출석했다. 2017년 10월 당시 특감반원 A 씨는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이던 유 부시장이 업체와 유착 관계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지난해 12월 야당이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A 씨의 보고서가 공개됐다. 여기엔 ‘관련된 업체에 도움을 주고, 그 대가로 골프 접대 등 각종 스폰서 관계를 유지… 자신의 처에게 선물할 골프채를 사줄 것을 요구… 공항이나 국회 이용 시 업체로부터 차량과 기사를 제공받고… 자녀 유학비와 항공권 등 금품 수수’ 등이 적혀 있었다. 사실이라면 감찰만으로 부족해 보일 만큼 내용이 심각하지만 이후 처분 과정이 의혹을 키웠다.

행정부 소속 고위공직자 감찰 권한이 있는 특감반이 즉각 유 부시장 감찰에 나섰다. 특감반에서 세 차례 조사받은 유 부시장은 75일 동안 병가를 낸다. 복귀 뒤에도 금융위는 유 부시장을 추가 감찰하지 않고, 보직만 해임한다. “청와대가 품위 유지와 관련하여 문제가 있다고 통보했지만 금융위의 자체 감찰을 실시할 필요성이 높지 않았고, 중복 감찰을 금지하는 관련법을 따랐다”는 것이 금융위가 국회에서 밝힌 이유다. 금융위가 품위 위반 내용을 파악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이유로는 부족한 설명이다.

더 납득이 가지 않는 건 금융위가 감독기관인 국회 정무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유 부시장을 추천한 것이다. 지난해 3월 유 부시장은 국회로 자리를 옮겼고, 같은 해 7월엔 부산시 부시장으로 이동했다. 같은 해 12월 31일 조국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국회에 출석해 “유 부시장의 비위첩보 근거가 약하다고 보았다. 비위첩보와 관련 없는 사적인 문제가 나와 금융위에 통지했다”고만 했다. 나머지는 함구했다.

행정고시 출신인 유 부시장에 대해 “공무원처럼 일하지 않았다. 능력이 뛰어났다”고 호평하는 동료들이 있다. 하지만 특감반 보고서 작성과 감찰, 감찰 중단, ‘영전 인사’는 2006년 청와대 1부속실 행정관 등으로 근무한 유 부시장의 이력과 무관치 않다고 의심하는 시각이 많다. 문재인 정부의 권력 실세와 가깝다는 배경이 아니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특혜라는 것이다.

검찰 행보 역시 처음엔 미덥지 않았다. 검찰 고발 사건은 처음에 서울동부지검에 배당했지만 다른 지검에 재배당할지를 놓고 상당 기간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없었던 일로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수사 속도가 늦춰진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명된 올 7월 이후 첫 검찰 인사에서는 서울동부지검의 수사지휘라인 인사에 권력층이 특히 신경을 썼다는 뒷말이 나왔다.

기존 수사팀은 A 씨를 처음 조사한 뒤 유 부시장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지 않았다. 해외 송금 유학비 명세 등을 추적하다 보면 단서가 나올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올 9월경 새 수사팀은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자료를 입수하고, 계좌추적 영장으로 자금 흐름을 추적했다. A 씨는 최근 다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이후 검찰이 금융위와 유착 업체 5, 6곳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조국 사태는 개인의 위선과 가족의 일탈 범죄라고 볼 수도 있다. 반면 유 부시장의 감찰 무마 사건은 여러 명이 연루된 공권력의 불법 남용 의혹 사건이다. 검찰 지휘부가 사명감을 갖고 1년간 베일에 싸여 있는 이 사건의 실체를 끝까지 추적해야 한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유재수#공권력 남용#감찰 무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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