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이 속옷 스칠때 남긴 ‘터치 세포’서 결정적 증거 DNA 나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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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연쇄살인 용의자 확인]경찰, 사건발생 역순으로 분석나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9번째 피해자 김모 양(당시 13세)은 1990년 11월 16일 경기 화성시 병점동(당시 태안읍 병점5리)의 야산에서 발견됐을 때 흰색 속옷 하의만 입은 상태였다. 이 속옷은 화성 사건의 유류품으로 영구 보존돼 있을 뿐 아니라 김 양 발견 당시의 사진을 통해 일반인의 뇌리에도 남아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속옷이 유력 용의자 이춘재(56)를 찾아낼 결정적 증거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건 29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난달이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중요미제사건전담수사팀은 올 7월 1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김 양과 화성 사건 10번째 피해자 권모 씨(당시 69세·여)의 유류품을 보내 분석을 의뢰했다. 올 6월 경기 오산시 ‘백골 시신’ 사건처럼 오래된 사건도 유전자(DNA)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여기엔 김 양의 속옷도 있었다. 수사팀이 총 10건의 화성 사건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발생한 2건의 증거물을 우선적으로 국과수에 보낸 이유는 최근에 수거한 것일수록 DNA 정보가 더 뚜렷하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국과수의 분석 결과 김 양 속옷의 허리 부분에선 미량의 남성 DNA가 검출됐다. DNA 감정 전문가들이 이른바 ‘터치 세포’라고 부르는, 옷 등을 만졌을 때 손에서 묻어나는 땀의 혈액세포나 상피세포에 포함된 것이었다. 권 씨의 유류품에선 DNA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국과수로부터 이 남성의 DNA 정보를 넘겨받아 지난달 8일 대검찰청에 전달했다. 대검은 2010년 7월 시행된 DNA법에 따라 강력 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보관하고 있다. 대검이 해당 DNA를 기존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한 결과 1994년 1월 충북 청주시에서 처제를 강간 살인해 이듬해 무기징역이 확정된 이춘재의 것과 일치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시점의 역순으로 감정 대상을 확대하기로 하고 국과수에 7번째 피해자 안모 씨(당시 52세·여) 등의 유류품을 추가로 보냈다. 그 결과 안 씨의 속옷에서도 김 양의 경우와 똑같이 땀에서 비롯된 DNA가 검출됐다. 추가로 분석한 5번째 피해자 홍모 양(당시 18세)의 경우엔 속옷과 티셔츠, 청바지, 브래지어 등 4건의 증거물에서 체액의 DNA가 검출됐다. 모두 이춘재의 것과 같았다.

경찰은 18일 이춘재가 수감된 부산교도소에 프로파일러 3명을 보내 그를 면담했다. 이춘재는 이 자리에서 화성 사건을 저질렀느냐는 취지의 물음에 시인하지도 부인하지도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19일에도 이춘재를 면담하는 한편 4번째 피해자 이모 씨(당시 23세·여)의 유류품 감정을 국과수에 의뢰했다.

이춘재는 화성에서 나고 자라 연쇄살인 사건이 한창이었던 1990년대 초반까지 화성 일대에서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춘재의 본적은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로, 화성 사건 중 2번째와 6번째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다.

이춘재가 처제를 살해해 청주서부경찰서(현 청주흥덕경찰서) 형사들이 이춘재의 태안읍 본가를 압수수색했을 때 화성 사건 수사본부 관계자들도 그 장소에 나타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청주서부서 담당형사였던 김시근 씨(62)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화성 사건 수사본부 관계자들에게 ‘수사자료를 열람하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결국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춘재를 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조건희 becom@donga.com·한성희·구특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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