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만나러 갑니다[횡설수설/우경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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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만갑’을 처음 시작할 때 남한에선 UFO(미확인 비행 물체)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매거진M이 2017년 2월 종합편성채널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를 분석한 글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 이방인으로 살던 탈북민들이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고 TV 예능의 주인공이 된 ‘이만갑’은 그 자체로 파격이었다. 탈북민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놓았다. 그 ‘이만갑’이 18일로 400회를 맞았다.

▷‘이만갑’ 속 재기 넘치는 탈북 여성들의 수다에는 웃다가 울리는 유머 코드가 있었다. 지금까지 600명이 넘는 탈북민이 출연했다. ‘북한 김태희’ ‘북한 심은하’가 탄생했다. ‘북한 심은하’로 불리며 7년간 출연 중인 신은하 씨와 그의 언니 은희 씨 자매는 고운 외모에선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우여곡절을 겪고 한국에 왔다. ‘이만갑’을 탄생시킨 채널A 이진민 PD는 “보통 20대 아가씨가 경험할 수 있는 고통의 총량이 넘는 기억을 갖고 있는데도 참 밝았다”며 “온갖 고초를 겪은 탈북민들이 삶에 대한 희망, 가족에 대한 사랑을 순수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토크쇼’로도 통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사연을 듣고 있자면 다른 체제 아래서 억압받던 삶이 안타까우면서도 사람 사는 게 어디서나 비슷하구나 싶다. ‘이만갑’은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과 같았다. 탈북민들 사이에서도 인기 프로그램이다.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의식해 또는 북한에 남은 가족들을 위해 신분 노출을 꺼리던 이들이 당당히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계기가 됐다. 2016년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한국 언론과의 첫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체류 북한 외교관들과 주민들이 ‘이만갑’을 즐겨 본다고 했다. 북한을 들여다보는 창인 동시에 남한을 들여다보는 창이 된 ‘이만갑’은 남북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 일조하고 있다.

▷첫 방송부터 ‘이만갑’을 진행해 온 MC 남희석 씨는 “언젠가 두만강, 백두산에서 북한을 바라보며 방송하고 싶다”며 400회를 맞이한 소회를 밝혔다. 아마 출연자들은 더욱 간절할 것이다. ‘이만갑’ 5주년 특집에 출연했던 최종숙 씨는 “통일이 딴 게 있겠느냐. 어디든 맘대로 가고, 누구든 맘껏 만나고. 하루빨리 평양 가서 이만갑 찍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만갑’ 출연자들이 북녘에서 마음껏 웃고 떠들며 끼를 발휘하는 그날,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이제 만나러 갑니다#탈북 여성#이만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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