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9년만에 존폐 위기 몰린 한국패션산업硏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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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과제 수주 못해 경영난 가중… 위로금 문제로 본사 건물 경매 임박
보조금 횡령 의혹으로 경찰 수사도

대구 동구 봉무동 한국패션산업연구원. 2010년 77억 원을 들여 지은 이 건물은 최근 대구지방법원의 강제 경매 결정에 따라 주인이 바뀔 수 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제공
대구 동구 봉무동 한국패션산업연구원. 2010년 77억 원을 들여 지은 이 건물은 최근 대구지방법원의 강제 경매 결정에 따라 주인이 바뀔 수 있다. 한국패션산업연구원 제공
대구 동구 봉무동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내년 설립 10년을 앞두고 존폐 위기에 처했다. 경영난으로 본사 건물이 법원의 강제 경매에 몰린 데다 올해 초에는 직원 임금도 제때 주지 못했다. 최근 신임 원장 선임과 정부 지원금 집행 과정에서 비리 의혹이 제기돼 경찰 수사까지 받고 있다.

19일 대구시 등에 따르면 한국패션산업연구원은 지난달 초 대구지방법원으로부터 건물의 강제 경매 결정 통지를 받았다. 2017년 업무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한 직원 A 씨의 유족에게 위로금 1억3000만 원을 제때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구원 측은 유족이 요구한 2억2000만 원 가운데 9000만 원을 먼저 지급하고 산업재해 결정 이후 나머지를 주기로 했지만 계속 미뤘다.

근로복지공단은 5월 A 씨가 산업재해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A 씨 유족은 7월 대구지법에 건물 가압류 신청을 냈지만 이후에도 연구원이 나머지 위로금을 지급하지 않자 법원이 강제 경매 결정을 내렸다.

경매는 임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주일 전 법원 관계자가 직접 감정 작업을 벌인 후 “채권자에게 금액을 지급하라”고 권고했다고 한다. 경매가 이뤄지면 건물 매각 후 유족에게 위로금을 지급하고 연구원 측이 나머지 차액을 받는다. 이 건물은 2010년 약 77억 원을 들여 지었다.

연구원은 경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위로금 지급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박재범 원장 직무대행은 “관리 감독 책임이 있는 산업통상자원부와 대구시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난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핵심 동력인 정부의 연구개발(R&D) 과제를 수년째 수주하지 못한 것이 주요 요인이다. 2010년 설립 이후 2014년까지 대구시 경북도 산업부로부터 매년 지원금 총 16억 원을 받았지만 이후 점점 줄어 지난해엔 4억 원만 받았다. 연구원 관계자는 “2015년부터 이사장과 원장 등이 횡령과 각종 용역 비리에 연루되면서 본격적인 경영난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여기다 2016년 대구 서구 평리동의 한 건물을 45억 원에 매입했는데 임대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오히려 경영난을 가중시켰다는 이야기가 연구원 안팎에서 나온다. 올해 경영 상태를 봤을 때 약 10억 원의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연구원은 올 초 직원 임금을 체불하다가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의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직원 4명은 무급 휴직을, 1명은 퇴사를 결정했다. 이달 11일에는 내부 직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 보조금 횡령 정황을 고발하면서 경찰이 연구원을 압수수색했다. 현재 관련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연구원은 지난달 신임 원장 공모 서류심사 과정에서 섬유패션 관련 경험이 없는 육군 4성 장군 출신에게 최고점을 줬다가 업계의 뭇매를 맞았다. 연구원은 해당 후보자를 포함해 3명의 인사 검증을 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경영 호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산업기술혁신촉진법에 따라 섬유 및 의류산업 연구개발, 중소기업 지원을 목적으로 한국패션센터, 한국봉제기술연구소를 통합해 설립했다. 산업부 산하 전국 15개 전문생산기술연구소 중 하나다. 매년 대구시의 지원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시에 관리감독권이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위로금 지급을 비롯한 경영난은 산업부와 논의해 결정할 일”이라고 말했다. 본보는 산업부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한국패션산업연구원#강제 경매#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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