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우의 오버타임] 한 번뿐인 신인왕, 그러나 ‘전설’이 될 기회는 동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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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9월 16일 05시 30분


LG 정우영(왼쪽)-NC 김태진. 스포츠동아DB
LG 정우영(왼쪽)-NC 김태진. 스포츠동아DB
1993년 프로야구 신인왕은 삼성 라이온즈 양준혁이다. 고향팀 입단을 위해 ‘재수(상무 입대)’마저 불사한 괴물 루키는 106경기에서 타율 0.341, 23홈런, 90타점을 올리며 생애 단 한 번뿐인 영광을 차지했다.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타격, 출루율, 장타율 1위를 휩쓸었을 뿐 아니라 홈런과 타점에서도 모두 2위에 올랐다.

당초 뜨거울 것으로 예상됐던 그해 신인왕 레이스는 양준혁의 독주로 싱겁게 막을 내렸다. 국가대표 유격수로 잔뜩 기대를 모은 해태 타이거즈 이종범 역시 126경기에서 타율 0.280, 16홈런, 53타점, 73도루의 눈에 띄는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도루 1위도 롯데 자이언츠 전준호(75개)의 몫이었다. ‘바람의 아들’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해 한국시리즈(KS)에선 이종범이 주인공이었다. 홈런은 없었지만 5차전 3도루를 비롯해 29타수 9안타(타율 0.310) 4타점 7도루로 해태가 삼성을 4승1무2패로 꺾는 데 앞장섰다. KS 최우수선수(MVP)로 우뚝 섰다. 팀 선배인 김정수(1986년)에 이어 신인으로는 역대 2번째 KS MVP의 영광을 안았다. 반면 양준혁은 25타수 4안타(타율 0.160) 2타점으로 생애 첫 KS를 마쳤다.

올해 신인왕 레이스에선 LG 트윈스 잠수함투수 정우영이 꾸준히 앞서나가고 있다. 경쟁자들을 한 명 한 명 따돌리더니 어느덧 유력한 신인왕 후보로 떠올랐다. 15일까지 52경기에서 4승5패1세이브4홀드, 평균자책점 3.00이다. 한때 대항마로 거론된 삼성 원태인, 롯데 서준원은 소속팀의 부진과 맞물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정우영이 신인왕에 등극한다면 LG 소속으로는 1997년 이병규 이후 무려 22년 만이다.

뻔한 결말을 예고했던 신인왕 레이스에 NC 다이노스 내야수 김태진이 복병으로 등장했다. 2014년 데뷔한 ‘중고신인’이라 그동안 주목도가 떨어졌다. 그러나 후반기 3할대 타율을 앞세워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다. 5위 경쟁의 분수령으로 간주된 KT 위즈와의 추석 연휴 맞대결 2연전 첫날(12일) 2회 1사 만루서 터트린 싹쓸이 3루타가 최근 김태진의 급부상만큼이나 인상적이다. 남은 경기가 얼마 없는 사실이 아쉽다.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더욱이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는 인물은 대개 한 명이다. 그러나 주인공을 돋보이게 만드는 무대장치와도 같은 하찮은 배역이라도 이제 막 그 길로 들어선 이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법이다. 그들 대다수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미래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주인공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정우영과 김태진에게 가려진 신인들 중에서도 ‘미래의 전설’은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다. 신인왕 경쟁에서 패했다고 좌절할 필요도 없다. 1993년 신인왕은 양준혁이지만, 이종범은 그에 못지않은 족적을 KBO리그에 아로새겼다. 또 그해 프로에 데뷔한 좌완투수 이상훈은 ‘야생마’라는 별칭과 함께 여전히 팬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지금 이 순간 꿈을 좇는 선수들은 샛별보다 더 밝고 큰 별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누구나 품고 있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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