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FTA 막아냈던 김현종…지소미아 종료 과정서도 ‘키맨’

  • 뉴시스
  • 입력 2019년 8월 22일 22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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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FTA도, 지소미아도 '오직 국익'…종료 명분도 '국익'
한일 갈등 정점 때 워싱턴 방문…지소미아 관련 美 여론 탐색
독자 군사위성 '안보 주권' 강조…文 '평화경제' 구상 연장선

과거 일본과의 자유무역협정(FTA) 관철 시도를 막아냈던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과정에서도 ‘키 맨(key man·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국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온 김 차장은 노무현·문재인 두 정부에 걸쳐 불합리한 일본과의 협정을 멈춰세운 인물로 기록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소미아 종료 통보 시한을 이틀 앞둔 22일 일본과 3년 간 유지해 온 지소미아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가 도출한 방안을 수용했다.

김유근 안보실 1차장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을 열어 “정부는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결정했으며, 협정의 근거에 따라 연장 통보시한 내에 외교경로를 통하여 일본정부에 이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1년 단위로 연장되는 지소미아는 만료 90일 전 어느 한 쪽이 더이상 협정을 유지할 의사가 없음을 통보하면 종료된다. 정부가 통보 시한(24일) 이틀 전인 이날 종료를 결정함에 따라 지난 3년 간 유지해온 지소미아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됐다.

청와대 내부는 물론 정부 여당 내에서 지소미아 유지를 둘러싼 찬반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결국 국익의 관점에 따라 종료를 하게 됐다.

김유근 1차장은 “정부는 안보상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체결한 협정을 지속시키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종료 결정에 이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국가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명분도 중요하고, 실리도 중요하고, 국민의 자존감도 지켜지는 것도 중요하다”며 국익 중심의 결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익 속에는 여러 개념들이 내포 돼 있지만 그 중에서 실리적인 면을 우선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우리 경제의 실질적 피해를 조장하는 행위를 먼저 시도했던 만큼, 국익 차원의 실질적 대응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김현종 2차장은 NSC 상임위에 앞서 가진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의 면담 후 “우리 국익에 합치하도록 판단을 잘 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차장이 강조했던 국익이 단순한 레토릭(정치적 수사)이 아니라 결정적 판단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공통된 인식이다.

김 차장이 철저한 국익 관점에서 일본과의 협정을 깬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참여정부 시절 한일 FTA 협상 수석대표였던 김 차장은 당시 일본과의 FTA 체결 여론에 맞서 협상을 멈춰 세운바 있다.

일본과의 FTA 협상을 깼던 사례는 훗날 한미 FTA 체결 과정의 어려움을 담기 위해 발간한 자서전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속에 과거의 경험담 중 일부분으로 간략히 소개 돼 있다.

김 차장은 한일 FTA 협상을 깼던 15년 전 일화를 지난 12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풀어서 설명했다.

김 차장은 당시에도 부품·소재 분야에서의 한일 간 기술 격차가 워낙 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를 체결하면 일방적인 손해가 된다며 노무현 대통령을 설득했다.

김 차장은 “이런 상황에서 한일 FTA를 타결할 경우 ‘제2의 한일 강제병합이 될 것 같다’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 드렸다”며 “‘이것은 우리가 안 하는 것이 국익에 유리하다’고 말씀 드렸었다”고 전했다.

김 차장은 한일 갈등이 정점에 달하던 지난달 말 극비리에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인사들을 두루 만났다.

3박4일 동안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직무대행,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찰스 쿠퍼먼 국가안보부보좌관, 국무부 고위 인사 등 14~15명을 만나 경제·외교전략·안보 이익 등 포괄적인 관점에서 미국의 구상을 확인했다.

김 차장은 “알고싶은 것이 있어 미국 백악관과 상하원을 찾았었다”면서 “미국이 한미일 삼각공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재무장한 일본 위주의 아시아 외교정책 운영을 중요시 생각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것을 어느 정도 알아야만 우리의 외교정책과 국방정책을 수립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그런 것들에 대해서 물어봤었다”고 덧붙였다.

지소미아를 미국이 주도했다는 점에서 종료를 결정할 경우 어떤 불이익이 발생하는지 여부를 계산하기 위한 사전 탐색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이날 “외교안보 차원에서 우리의 결정이 한일 관계나 한미 관계, 한반도에 어떠한 영향이 있을지 평가했다”고 한 것도 이러한 맥락 위에서 해석된다.

미국이 기존 한미일 삼각공조의 체제에서 대(對) 중국 봉쇄정책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완전히 노선을 바꾼 것이라면 우리 정부도 그에 걸맞는 변화된 외교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게 김 차장의 생각었던 만큼 지소미아 종료를 기점으로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일본으로부터 제공받는 정보 의존도를 줄이는 차원에서 언급한 국내 정찰용 인공위성 도입 역시 지소미아 종료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일본으로부터 ‘경제 독립’을 선언한 것의 연장선상에서 ‘안보 독립’까지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김 차장은 “우리가 안보 분야에서도 외부 세력의 의존도가 너무 높으면 부품소재와 같은 문제가 안 생긴다는 보장이 없다”며 “우리도 빨리 저궤도 정찰용 인공위성을 만들어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곧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 구상과 맥을 같이 한다.

평화경제란 문 대통령이 새로운 100년을 지속해 나갈 국가통치 철학으로 제시한 ‘신(新)한반도 체제 구상’의 중심 개념이다. 통일 한반도의 실현을 전제로 누릴 수 있는 경제효과가 막대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다른 이름의 한반도 평화 구상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일본 경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으로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처음 언급한 평화경제 개념을 다시 꺼내들었었다.

우리가 맞이할 새로운 100년은 냉전질서가 지배했던 과거 100년과 달리 우리가 중심이 돼야한다는 사고의 전환에서 신한반도 체제가 출발하는 만큼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는 평화경제 역시 궤를 같이 한다.

김 차장이 강조한 외부 세력의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것도 여기에서 출발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김 차장이 최근 국면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한 것이 맞다”면서 “수많은 의견들이 있었고 치열한 내부 토론 과정을 거쳐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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