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 기자의 투얼로지] ‘거짓말처럼 평화로운’ 고흥서 사색에 잠기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9년 6월 20일 05시 45분


소록도 중앙병원에 있는 구라탑. 한센병을 무찌르고 정복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기념물로, 자원봉사를 왔던 대학생들이 세웠다. 고흥|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소록도 중앙병원에 있는 구라탑. 한센병을 무찌르고 정복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기념물로, 자원봉사를 왔던 대학생들이 세웠다. 고흥|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다크 투어리즘부터 혼밥 맛집까지…혼행족을 위한 여행지, 고흥

한센인들 피눈물 깃든 소록도 지나
미르마루길 걷다보면 눈앞에 바다
분청박물관 둘러보는 재미 좋구나
동방식당 삼겹살백반 푸짐도 하네

남도 끝에 자리잡은 고흥은 가볼 곳이 참 풍성한 고장이다. 다도해 바다를 품은 해안을 따라 나로도 거금도 소록도 연홍도 같은 섬들이 있고, 내륙으로는 능가사가 자리잡은 팔영산부터 마복산 천등산 봉래산 등 풍광 좋은 산들이 있다. 특히 요즘 유행인 ‘혼행’(혼자 하는 여행)에서도 고흥은 매력적인 곳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여유로운 해안길이 있고,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재난이나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사건의 발생지를 찾아가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을 체험하는 아픈 근대사의 현장도 있다. 여기에 가성비 좋은 맛집과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박물관까지…. 홀로여행길이 전혀 지루하거나 아쉽지 않는 다양한 재미가 고흥에는 있다.

● 솔숲 데크길과 다크 투어리즘, 소록도


고흥반도 끝 녹동항에 인접한 소록도는 일제 때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수용됐던 곳이다. 과거 한센병 환자들의 피눈물이 배어 있는 이곳은 대표적인 다크 투어리즘 여행지다. 4.4km²의 아담한 크기인 소록도는 국도 27호선을 타고 소록대교를 이용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소록도에서 일반인에게 허용된 공간은 많지 않다. 방문객들은 국립소록도병원과 중앙공원까지만 출입이 허용된다. 그것도 오전 9시부터 5시까지만 가능하다. 소록대교 아래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왼쪽으로 걸으면 소나무들 사이로 잘 관리된 데크길이 보인다. 데크길을 따라 걸으며 오른쪽으로 거금대교와 푸른 바다, 한가로운 갯벌이 한 눈에 들어온다. 솔숲 그늘과 시원한 바닷바람이 어우러져 여름에 걷기 딱 좋은 길이다. 15분 남짓의 길지 않은 길을 마치면 일제 때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 실상을 보여주는 감금실, 검시실, 한센병 자료관 등의 건물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면 중앙공원이 나온다. 1936년 일본인 병원장이 천황에 바치겠다며 환자들을 동원해 세운 공원이다. 흐트러진 곳 없이 잘 다듬어진 조경, 거짓말처럼 평화로운 분위기가 섬의 역사와 어우러져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미르마루길에서 내려다 본 고흥 9경 중 하나인 남열해돋이 해수욕장과 한려수도 바다. 고흥|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미르마루길에서 내려다 본 고흥 9경 중 하나인 남열해돋이 해수욕장과 한려수도 바다. 고흥|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다도해 절경 즐기며 느긋하게, 미르마루길

미르마루길은 남열리의 우주발사전망대에서 시작해 용바위까지 총 4km의 해안길이다. 용의 순우리말인 ‘미르’와 ‘하늘’을 뜻하는 ‘마루’를 합쳤다. 난이도가 평이하고, 천천히 걸어도 1시간 정도면 완주할 수 있어 부담도 없다. 짧은 코스지만 우주발사전망대부터 사자바위, 용바위, 남열해돋이 해수욕장, 다랭이논, 몽돌해변 등 아기자기한 볼거리를 지니고 있다. 길 끝에는 용바위가 있는 영남면 우천리 용암마을이 있다. 이곳 용바위에서 해안선을 끼고 1∼2분만 걸으면 다양한 지질현상이 빚어낸 멋진 암석해변이 나온다. 마치 제주도의 용머리해안을 떠올리게 하는 절경이다. 제주 용머리해안보다 규모는 작지만 대신 사람으로 북적이지 않아 훨씬 한가롭다.

알찬 전시 프로그램과 야외 조각공원의 전시물이 인상적인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의 전시실. 고흥|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알찬 전시 프로그램과 야외 조각공원의 전시물이 인상적인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의 전시실. 고흥|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기대 이상의 만족감, 고흥분청문화박물관

지자체마다 각종 박물관이나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이 유행이다. 단체장의 대표 치적사업이지만 아쉽게도 여행자 시각에서 보면 목적이 모호하거나 내용이 부실한 곳이 상당수다. 그래서 최근 개관한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을 찾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 이상의 전시 프로그램과 아기자기한 야외시설이 꽤 재미있는 곳이다. 국내 최대의 분청사기 가마터인 사적 제519호 운대리 가마터에 세운 박물관으로 역사문화실, 분청사기실, 설화문학실 등이 있다. 특히 야외에 설화 내용을 다양한 조형물로 표현한 분청공원을 둘러보는 즐거움이 남다르다. 조종현·조정래·김초혜의 가족문학관이 박물관 옆에 있어 함께 돌아보면 좋다.

고흥의 가성비 높은 맛집 중 하나인 동방기사식당의 대표메뉴 삼겹살 백반. 고흥|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고흥의 가성비 높은 맛집 중 하나인 동방기사식당의 대표메뉴 삼겹살 백반. 고흥|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가성비 만점, 삽겹살백반의 동방기사식당

남도여행을 할 때 음식은 남다른 호사이다. 어디를 갈지 ‘결정장애’가 생길 정도로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고흥도 마찬가지다. 남도라는 명성에 걸맞게 많은 맛집이 있다. 그중 동방기사식당은 가성비를 따지는 실속파 여행자에게 딱이다. 이곳 메뉴는 삼겹살백반 하나. 1인분 8000원의 착한 가격이다. 주문하면 5분 이내에 푸짐한 반찬과 함께 한상이 차려진다. 원래는 택시기사 등 지역민의 맛집이었지만, 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평일 낮에도 외지인이 찾는 명소가 됐다.

고흥|김재범 기자 oldfiel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