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 “소주 한 잔, 말 한마디에 그만…”, 최민식 충무공을 연기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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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4년 7월 31일 13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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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술이 문제지, 술이…. 허허허.”

배우 최민식(52)에게 이순신 장군을 맡은 계기를 묻자 껄껄껄 웃으며 답했다. 어쩌면 저 대답이 가장 솔직한 것 같다. 어느 누가 충무공 이순신 역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고 하겠는가. 대체불가 배우 최민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감이 뒤따르는 이 역할을 또 고심하고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한다는데 덥석 물진 않죠. 김한민 감독에게 꼼꼼히 물어봤습니다. 어떤 이야기이며, 제작비는 얼마고, CG는 어떻게 할 건지…. 제작비가 그만큼 따라주지 않으면 허술한 영화가 될 것이라는 게 불 보듯 뻔했어요. 막말로 이순신 장군의 연기를 잘못하면 욕만 바가지로 먹을 거고. 허허.”

하지만 그를 붙잡은 건 소주 한 잔을 함께 기울인 김한민 감독의 한마디였다. 최민식은 “아 그런데 김 감독이 ‘형님, 이런 영화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하는데 마음에 ‘탁’ 와 닿더라. 우리 조상님들이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낸 모습을 우리가 목숨 걸고 찍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이순신으로 변해갔다. ‘난중일기’와 저술서를 오가며 이순신 장군에게 대한 가장 객관적인 기록들을 훑기 시작했다. 수많은 소설도 있었지만 보지 않았다. 작가의 상상력에 혹여 매료될까 겁이 났단다. 글을 읽어나가며 최민식은 점점 내면을 이순신 장군으로 차곡차곡 채워나갔다. 우리가 알고 있던 위대한 장군의 모습뿐 아니라 나약한 인간의 이순신의 모습까지 표현했다. 그가 연기한 성웅 이순신은 가장 드라마틱한 ‘명량대첩’을 중심으로 왕을 모시는 신하이자 한 사람의 아버지, 군사를 이끄는 장수이자 두려움에 번민하는 인간으로서의 입체적 면모를 묵직하고 강렬한 드라마 속에 담아냈다.

“제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곳은 ‘난중일기’밖에 없었어요. ‘난중일기’도 살펴보면 별 내용은 없어요. 그야말로 일기니까. ‘오늘은 종일 비가 내렸다.’, ‘토사광란이 심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있었다’라고 쓰여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흐림’이라고만 돼 있어요. (웃음) 또 아들 이회가 무참하게 살해당했을 때는 글 속에서 피눈물이 흐를 것 같은 비통함이 느껴졌어요. 담백하고 솔직한 그분의 성품을 엿볼 수 있었죠. 그 분은 병중을 제외하고 붓을 놓치지 않으셨어요. 언제나 자기 성찰을 하셨던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죠. 더 존경하게 됐어요.”

그의 묵직한 정공법은 통했다. 최민식의 진심 어린 존경과 애착을 담은 이순신 장군의 연기와 몸을 사리지 않았던 액션 연기는 두려움과 포기를 모르는 이순신 장군의 신념과 연기에 생명력을 더해 강한 흡입력을 갖게 됐다. 특히 남은 12척의 배를 이끌고 330척의 왜군에 맞서는 이순신으로 분한 최민식은 눈빛만으로도 스크린을 압도했다. 영화를 본 그도 만족스러웠나보다. 단번에 “보람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1차 편집본은 CG가 없어서 감흥이 없었는데 기술시사를 보니 야~. 보람이 있더라. 우리가 저런 걸 해냈다니 보람을 넘어서 뿌듯했다. 언론시사회 때 늘 기자들이 보는 관에 슬쩍 들어가 뒤에서 본다. 휴대폰 불빛이 많으면 망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다행히 ‘명량’은 두 세 명이 있었다. 다행이었다”며 웃었다.

하지만 최민식은 자신이 쌓은 공보다 김한민 감독과 더불어 추운 날씨에 고생한 배우들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그는 “나는 솔직히 수군통제사라 배 위에서 별로 하는 게 없었다.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활 몇 번 쏘고 한 것 밖에 없었다. 진짜 배 위에서 싸운 것은 수많은 배우들이었다. 칼과 활을 들고 싸웠던 배우들은 칼에 베이는 건 기본이고 발가락도 부러졌다. 특히 ‘준사’역으로 나왔던 오타니 료헤이는 귀에 심한 상처를 입어 출혈이 심했다. 61분의 해전을 완성시킨 것은 바로 그들이었다”고 말했다.

“군졸 중에 고경표라는 배우가 있었는데 참 괜찮더군요. 탈영한 장수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 아주 짧은 순간에 공포와 슬픔을 단번에 담아내던데 정말 좋았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기도 해요. 과거 군졸들이 얼마나 어렸겠어요. 한창 부모님 사랑을 받고 자랄 나이에 전장에 나와 적군들과 목숨을 바쳐 싸워야하는데…. 고경표가 그것을 잘 전달한 것 같아요.”

이어 그는 연출자 김한민 감독에 대해 “역사가 스포일러인 이 이야기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이 많이 됐다. 모양새는 다르지만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전투 장면이 있지 않나. 아군 적군을 떠나 살육의 현장이 구현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랍다. 배와 배가 부딪히고 회오리 바다속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잘 담은 김한민 감독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을 더불어 ‘노량해전’, ‘한산도대첩’을 기획 중이다. 세상에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이순신 장군의 해전만큼은 꼭 스크린으로 선보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최민식에게 다시금 이순신으로 분한 모습을 볼 수 있는지 묻자 “내게 왜 그런 가혹한 일을 또…”라며 웃었다.

“현장이 정말 힘들었거든요. 아마 현장 가보시면 제가 무슨 말을 하는 지 느낄 수 있으실 거예요. 물론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3부작으로 만든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양하게 해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마트 가서 요구르트 하나를 사도 이것저것 비교해서 사는데…. 엄연히 배우들도 영화 산업에 나온 상품인데 소비자들이 그런 재미를 느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제가 하는 이순신 장군만 보면 지겹지 않을까요? 하하.”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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