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들의 열정…‘아버지농구대회’ 특별한 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4일 13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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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낭만이 꽃피는 대학 캠퍼스. 8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체육관에선 캠퍼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이색 풍경이 펼쳐졌다. 교수 연배쯤은 될 법한,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성들이 관중석이 아닌 코트 위에서 농구 경기를 하고 있었다. 각 팀 유니폼을 차려 입은 그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쉴 틈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세월의 무게를 못 어느새 불쑥 나온 뱃살도, 머리 위 내려앉은 백발도 그들의 열정을 가로막진 못했다. 8,9일 열린 ‘한국아버지농구대회’ 현장이다.

한국아버지농구협회가 2017년부터 매년 2차례씩 여는 이 대회는 한국나이로 50세(1970년생) 이상만이 참가하는 대회다. ‘100세 시대’를 맞아 생활체육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각 팀에서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50세 이상 중년 농구인 들을 위한 그들만의 대회가 열린 것.

7분 4쿼터로 진행되는 등 전반적인 룰은 일반 생활체육 경기와 비슷하다. 물론 이 대회만의 특별 룰도 있다. 팀 마다 최소 한 명씩 55세 이상 선수가 출전해야 한다. 출전 자격을 갓 넘긴 50대 초반 선수로만 팀을 꾸리는 걸 막기 위해서다. 점수 규정도 차이가 있다. 60세 이상은 득점마다 추가 1점, 70세 이상은 추가 2점이 부여된다. 골 하나로 최대 5득점(70세 이상 3점 슛 성공 시)까지 가능하다보니 순식간에 경기 흐름이 뒤바뀌기도 한다.

출전 선수의 나이를 구분하기 위해 55~59세 선수는 유니폼에 회색 테이프를, 60세 이상 선수는 녹색 테이프를 붙인 채 경기에 출전한다. 70세 이상은 대회 최고령인 최도영 씨(75·플러스 원)가 유일하다보니 별도의 표식이 없다. 40세(1980년생) 이상 여성도 출전가능하다. 출전 기준과 마찬가지로 추가 득점 규정 등도 남성 선수에 비해 10살 낮게 적용된다. 200여 명의 참가자 중 10여 명이 여성이다.


어느새 인생의 황혼기를 눈앞에 둔 이들은 사실 한국농구의 황금기를 함께 한 이들이기도 하다. 이들이 20, 30대였던 1990년대는 농구대잔치 등을 비롯해 농구의 인기가 정점을 찍었던 시기다. 레전드 팀의 신두섭 씨(50)는 “30년 가까이 해온 농구는 내게 가족 다음으로 소중하다. 직장생활 등 평소 고민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주일을 보낼 수 있는 재충전의 계기”라고 설명했다. “또래 친구들은 골프를 주로 치는데 여전히 코트 위에서 뛰어 다니는 내 모습을 부러워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한 대기업 상무인 그 또한 팀에서는 막내로 궂은일을 도맡는다.

대회 최고령인 최도영 씨는 “20살 넘게 차이가 나는 후배들에게 ‘형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코트 위다. 경기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주 농구 레슨과 웨이트 훈련도 빼먹지 않는다”고 말했다. 심판 판정에 대한 강력한 어필은 물론 때론 부상자도 속출하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꾸준한 팀 훈련이 필수라는 설명이다.

전체 참가자의 절반 가까이가 선수 출신이다 보니 경기 수준도 높은 편이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는 왕년의 농구스타 한기범 씨 등이 출전했다. 용산고 농구부 출신이 주축인 YOBC, 양정고 농구부 출신 QUALAS도 도전장을 냈다. 신 씨는 “그동안 농구의 즐거움은 골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수비 같은 조직적인 플레이를 많이 배운다. 농구의 또 다른 매력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목표는 이 대회와 같은 중장년층을 위한 대회를 한국 농구 문화의 하나로 남겨놓는 것이다. 김세환 한국아버지농구협회 회장(64)은 “대회를 잘 안착시켜 후배 농구인 들을 위한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는 50세 이상 뿐 아니라 60세 이상 등 다양한 연령별 대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창립총회를 실시한 협회는 연내로 사단법인을 출범해 지자체 등과의 협력을 추진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9월에는 강원 횡성군에서 40세 이상 팀을 포함해 총 25개 팀이 참가하는 대회를 열 계획이다. 이번 대회는 리바운드 팀이 우승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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