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떼죽음뒤 수차례 민원 외면… 주민 14명 암으로 잃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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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료공장 암발병’ 장점마을의 恨… 2001년 공장 세운뒤 악취 진동
한여름에도 창문 못열고 생활… 마을사람들 하나둘 암으로 떠나
“비료공장 불법-익산시 방관 탓”… 지자체-기업 상대 소송 채비

14일 환경부의 ‘장점마을 주민건강 영향조사 최종 발표회’가 열린 전북 익산시 국가무형문화재 통합전수교육관에서 장점마을 주민들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집단 암 발병 원인이 비료공장으로 밝혀지자 주민들은 정부와 익산시, KT&G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익산=뉴시스
14일 환경부의 ‘장점마을 주민건강 영향조사 최종 발표회’가 열린 전북 익산시 국가무형문화재 통합전수교육관에서 장점마을 주민들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집단 암 발병 원인이 비료공장으로 밝혀지자 주민들은 정부와 익산시, KT&G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보상할 것을 요구했다. 익산=뉴시스
“보기도 아까운 양반 잃고 나서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죽고 없는 남편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14일 전북 익산시 국가무형문화재 통합전수교육관. 환경부의 장점마을 주민건강 영향조사 최종 발표회 직후 마을주민 신옥희 씨(74)가 마이크 앞에 섰다. 손에는 밤새 눈물로 쓴 호소문이 들려 있었다.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종이에는 남편을 향한 그리움과 정부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48년 동안 함께 살면서 아프다는 소리 한번 안 하던 신 씨의 남편은 2014년 돌연 췌장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신 씨는 “물고기들이 떼죽음했을 때 실태조사만 잘했어도 마을 사람들이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부와 익산시, KT&G는 억울하게 죽은 사람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보상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KT&G는 2001년 장점마을 인근에 세워진 비료공장인 금강농산에 유기질 비료의 원료인 담뱃잎 찌꺼기(연초박)를 납품했다.

○ “비료공장의 탐욕, 지자체의 관리 부실이 원인”

이 마을 주민들의 고통은 2001년 근처에 금강농산이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금강농산에서 배출된 연기는 공장 뒤편 함라산에 막혀 산 아래에 있는 장점마을을 덮쳤다. 안개처럼 뿌연 연기는 악취도 강했다. 진한 담배 썩는 듯한 냄새 탓에 여름철에도 창문을 열 수 없었다. 한 집 두 집 시름시름 앓는 주민들이 늘어났다. 마을 저수지에서 물고기가 집단 폐사하는 일도 생겼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2017년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를 청원했고 그해 12월부터 올 5월까지 조사가 이뤄졌다. 정부의 조사 결과 밝혀진 원인은 금강농산이 KT&G에서 담뱃잎 찌꺼기인 연초박을 들여와 300도 이상 고온에서 건조시켜 유기질 비료로 만든 데 있었다. 연초박은 비료관리법에 의해 발효시켜 퇴비로만 사용해야 하고 고온에 노출시키는 건 불법이다. 주민들은 퇴비보다 유기질 비료가 2.5배 정도 비싼 점을 불법 생산의 이유로 추정한다.

이렇게 발생한 발암물질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와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은 별다른 여과장치 없이 공기 중으로 퍼졌다. 금강농산은 2015년부터 2017년 4월 폐업할 때까지 매년 대기 배출시설을 조작했다가 적발됐다. 금강농산에서 사용한 연초박은 현재까지 확인된 것만 2242t에 이른다.

그러나 익산시는 2015년 금강농산이 연초박을 유기질 비료 원료로 사용한다는 ‘폐기물 실적 보고’를 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날 발표장에 나온 환경부 관계자는 “불법 행위를 알고도 왜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트랙터를 끌고 가 공장 앞에서 항의도 하는 등 익산시에 여러 차례 민원을 넣었다”며 “익산시가 책임 있게 관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감사원은 익산시의 관리감독 부실 여부에 대해 감사를 벌이고 있다.

○ “암 발병 원인 많지만 장점마을은 명확”


연초박이 가열되며 발생한 발암물질들은 마을 곳곳에서 발견됐다. 조사 결과 마을에서 오래 산 주민일수록 발암 확률이 높았다. 특히 여성의 피부암 발생률은 전국 평균의 25배, 남성의 담낭 및 담도암 발생률은 전국 평균의 16배에 달했다.

금강농산에서 발생한 대기오염물질 영향권에 있는 주택의 벽과 바닥 등에서 긁어낸 침전먼지에선 공장 가동이 중단된 지 1년이 넘은 시점에서도 발암물질이 남아 있었다. 유해물질의 영향권이 아닌 마을에선 발암물질이 나오지 않았다. 또 마을 일대의 소나무 이파리 속 발암물질의 농도를 조사한 결과 공장을 가동하던 2년 전이 공장 폐업 후보다 훨씬 높았다.

정부의 발표로 암 발병의 원인은 입증됐지만 주민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밝혀진 원인을 토대로 정부의 피해 구제를 받거나 원인을 제공한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야 하는 긴 싸움의 출발선에 섰기 때문이다. 최재철 장점마을 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주민들이 수년 동안 환경오염으로 고통받고 집단으로 암에 걸린 이유는 비료제조업체의 불법 행위와 허가 기관인 전북도 및 익산시의 관리감독 소홀 때문”이라며 “전북도와 익산시는 주민들에게 사과하고 배상하라”고 말했다. 또 “(연초박을 납품한) KT&G는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공식 사과와 피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전문가들은 장점마을 외에 전국의 연초박 반입 업체들을 대상으로 전수조사의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강은지 kej09@donga.com / 익산=박영민 기자
#장점마을#비료공장#암발병#전북 익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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