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재수사로 34명 기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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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8개월만에 2차 수사결과 발표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을 재수사한 검찰이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책임자인 SK케미칼 및 애경산업 전 대표 등 34명을 재판에 넘겼다. 2011년 피해가 발생한 지 8년 만이다. 이들 기업은 유해성을 검증하지 않은 채 제품을 출시했고, 사고가 발생한 뒤에는 조직적으로 증거 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 안전성 검증 없었던 ‘예고된 비극’


23일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는 약 8개월의 수사 끝에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SK케미칼의 홍지호 전 대표(68) 등 8명을 구속 기소하고,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60) 등 2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2016년 1차 수사로 22명이 기소된 데 이어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모두 56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공식 피해자는 19일 기준 6476명이다. 이 가운데 사망자만 1421명에 이른다.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 등 18명은 유해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원료로 ‘가습기 메이트’ 등을 제조·판매하면서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아 소비자들을 사망 또는 상해에 이르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를 받고 있다. 2016년에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수사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이후 유해성에 대한 학계 조사 결과가 축적되고 환경부가 관련 연구 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수사가 재개됐다.

검찰은 제품 개발 단계부터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1994년 유공(현 SK이노베이션)이 가습기 살균제를 출시하는 과정에서 서울대 이영순 교수팀에 의뢰해 흡입독성 시험을 의뢰했지만 시험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가습기 살균제 판매를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SK케미칼은 2000년 가습기 살균제 사업을 인수해 2002년부터 애경산업과 공동으로 제조·판매하면서 안전성에 대한 객관적 검증 조치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필러, 이마트, GS리테일 등의 업체도 마찬가지였다. SK케미칼은 고객들로부터 혹시 인체에 유해한 것이 아니냐는 문의를 받고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흡입독성 화학물질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원료로 공급한 SK케미칼 전 직원 4명도 재판에 넘겨졌다.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의 원료였던 PHMG는 2016년 수사에서 유해성이 확인됐지만 당시 SK케미칼 직원들은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되는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 재수사 결과 PHMG를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소개하고 관련 실험을 진행한 사실이 확인됐다.

○ 조직적 증거 인멸… 공무원도 가세

기업들은 문제가 불거진 뒤 적극적으로 증거 인멸을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SK케미칼의 박철 윤리경영부문장(52·구속)을 비롯한 이 회사 임직원 5명은 2013년 정부 부처의 조사가 시작되자 서울대의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를 숨겼다. 고광현 애경산업 전 대표(62·구속) 등 애경산업 임직원들은 2016년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

환경부 서기관 최모 씨(44)가 애경산업에 환경부 국정감사 자료와 ‘CMIT/MIT 함유 가습기 살균제 건강영향 평가 결과 보고서’ 등 각종 내부 문서를 준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도 포착됐다. 최 씨는 대가로 수백만 원 상당의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11월에는 애경산업 직원에게 “검찰 압수수색에 대비해 자료들을 삭제하라”며 증거 인멸을 교사한 혐의도 받고 있다. 사건과 관련된 기업인 소환 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돈을 받고 로비 활동을 벌인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 양모 씨(52)도 구속 기소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다른 성분을 사용한 제조업체와 옥시 영국 본사, 외국인 임직원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고 밝혔다.

검찰의 가습기 살균제 관련 수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검찰은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기업을 공정거래위원회가 부실하게 조사했다며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당시 공정거래위원장) 등 직원 16명을 고발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황성호 hsh0330@donga.com·김동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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