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 부르는 강사법’ 현실로… 지난 학기 7834명 강단 떠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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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2019년 1학기 대학강사 분석
1년새 전체 강사 20% 급감… 처우개선 법이 대량해고 부메랑
교육부 실직 지원대상 2000명뿐… 법 시행 후폭풍 예측조차 빗나가

경기 북부의 한 대학에서 4년 동안 시간강사로 일했던 30대 여성 A 씨는 올 2월 ‘e메일 해고 통지’를 받았다. 시간강사가 많은 교양학부 소속이던 A 씨는 “학교 사정에 따라 다음 학기부터 수업이 없을 것”이란 내용의 e메일을 조교 계정으로 받은 뒤 실직했다. 그는 “지난해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학교가 갑자기 강의료를 올려줄 때는 좋았다”며 “돌이켜 보니 해고의 전 단계였던 모양”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교육부가 29일 발표한 ‘2019년 1학기 대학 강사 고용현황 분석’에 따르면 올해 전국 399개 대학의 강사는 지난해보다 1만1621명 줄었다. 전체 강사(5만8546명) 5명 가운데 1명 정도(19.8%)가 1년 만에 대학에서 사라진 것이다. 초빙교원이나 겸임교원같이 대학에서 다른 일자리도 구하지 못하고 A 씨처럼 아예 강단을 떠난 사람도 7834명이었다.

교육부의 이번 조사는 강사법(개정 고등교육법)이 시행된 1일 이전에 전국 대학들이 강사 수를 어느 정도 줄였는지 파악하기 위해 처음 실시했다. 교육부는 1년 만에 전체 강사의 20%가 줄어든 데 대해 “학생 정원이 감소하는 등 다른 이유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학들은 강사법 시행을 ‘강사 고용 절벽’이 발생한 핵심 원인으로 꼽고 있다.

강사법은 시간강사를 고용할 때 1년 이상 임용하도록 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3년의 재임용 기회를 보장하도록 했다. 방학 기간에도 임금을 지급하고, 퇴직금도 준다. 대학으로서는 연간 2000억 원이 넘는 추가 재원이 들어가는 일이다. 이 때문에 올 1월 전국 대학총장 139명이 “강사법 시행이 대학에 불러올 혼란을 막아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대학 정원이 줄고 등록금이 10년 넘게 동결되는 상황에서 강사에 들이는 비용만 늘리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대학의 재원 확보를 막은 채 강사 처우를 올리라고 주문하는 정책적 요구가 강사 수의 급격한 감소라는 ‘부메랑’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강사법 시행 여파로 감소하거나 심지어 실직할 강사의 수를 제대로 예측하지도 대비하지도 못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교육부가 올해 추가경정예산에서 강사법 시행으로 실직한 박사급 연구자를 지원하는 규모는 실제 실직자의 4분의 1 수준인 2000명(1인당 1400만 원)에 그쳤다. 교육부 관계자는 “강사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이 실직하는 경우가 가장 큰 문제여서 이를 위한 예산을 편성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올 1학기 실직한 전업강사만 따져도 4704명이나 됐다.

교육부는 올해 강사들의 방학 중 임금 288억 원을 각 대학에 나눠 주고 내년에는 퇴직금(232억 원)까지도 지원할 계획이지만 대학들은 “지엽적인 대책”이란 반응이다. 고용 경직성이 커졌는데 전체 인건비가 아닌 일부를 지원한다고 해서 강사 채용을 다시 늘리기 어렵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강사법 시행은 최저임금 인상과 마찬가지로 보호하려고 한 사람들의 고용 안정성을 도리어 흔드는 정책”이라며 “대학 재정을 현실화하지 않는다면 국가재정 투입 외에 고용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재명 jmpark@donga.com·강동웅 기자
#강사법#대학강사#대량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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