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하면 단축근무, 배우자도 출산휴가… 이런 회사문화 부럽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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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고용평등 실천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워라밸 제도

17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우아한형제들 사옥을 방문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김봉진 대표와 함께 회사를 둘러보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일·생활 균형 제도를 활성화해 2017년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뉴시스
17일 서울 송파구에 있는 ㈜우아한형제들 사옥을 방문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김봉진 대표와 함께 회사를 둘러보고 있다. ㈜우아한형제들은 일·생활 균형 제도를 활성화해 2017년 남녀고용평등 우수기업으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뉴시스
음식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서울 송파구 사옥에선 매일 점심시간마다 특별한 광경을 볼 수 있다. ‘흰색 사원증’을 목에 건 여성이 등장하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직원들이 줄을 양보한다. 흰색 사원증의 ‘위력’이다. 실제 17일 낮 12시 흰색 사원증을 목에 건 최주경 씨(29)가 사옥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검은색 사원증을 맨 동료들이 뒤로 물러섰다.

최 씨는 30주 차의 임신부. 우아한형제들은 최 씨와 같은 임신부들이 임신 사실을 알려오면 사원증 색깔을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바꿔준다. 몸이 무거운 임신부를 직원들이 배려하고, 임신기간 단축근무로 조기 퇴근하더라도 불러 세우지 말라는 취지다. 최 씨는 “임신을 하니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은데, 회사에서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니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 우아한형제들의 ‘우아한 배려’


우아한형제들의 이런 가정친화적 일터 문화를 정부도 주목하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날 우아한형제들 사옥을 방문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 회사의 일·생활 균형 제도를 활용한 직원들의 경험담을 들었다.

개발자로 일하는 한 직원은 “다른 회사와 달리 2주 동안 배우자 출산휴가를 다녀왔다”며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보면서 신생아를 키우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란 걸 새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이 장관은 “배우자 출산휴가를 꼭 가야 하는 이유는 그 시간을 같이 보내야 육아를 함께 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며 격려했다.

또 다른 직원이 이 회사만의 ‘유급 특별 육아휴직’을 소개하자 이 장관은 “너무 부러운 제도”라며 감탄했다. 우아한형제들은 초등학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둔 사원에게 재직기간 중 한 번 유급 특별 육아휴직을 한 달간 준다. 이 휴직을 받은 일부 직원은 가족 모두 제주도로 가 한 달간 살고 오기도 했다고 한다.

‘남녀고용평등 강조기간’을 홍보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린 이 장관. 뉴시스
‘남녀고용평등 강조기간’을 홍보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린 이 장관. 뉴시스
정부는 우아한형제들과 같은 일터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관련법 개정안을 올해 안에 통과시키는 것도 그중 하나다. 이 법안은 육아를 위한 단축근무 허용 기간을 최대 2년으로 늘리고, 육아휴직을 부부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배우자의 유급 출산휴가를 10일로 늘리고 출산휴가를 쓴 배우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사업주를 처벌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을 확대하고 여성의 독박육아로 이어지기 쉬운 제도적 허점을 고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 “지금 있는 제도부터 정착시켜야”

일각에선 법과 제도를 바꾸기에 앞서 모성보호와 일·가정 양립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도 △최대 1년의 육아휴직 △유급 3일(최대 5일)의 배우자 출산휴가 △연간 90일의 가족돌봄휴직 등이 법으로 보장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회원국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제도들이다.

문제는, 제도는 있는데 활용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2017년 육아휴직 사용자는 2003년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많은 9만123명을 기록했다. 하지만 2010∼2017년 0∼7세 자녀를 둔 여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여전히 38.3%에 그치고 있다. 2017년 기준 12개월 이하 자녀를 둔 여성 중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 비율은 42.3%로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12개월 이하 자녀를 둔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1.1%에 불과했다.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재훈 교수는 “법이 허용하는 육아휴직 기간은 OECD 국가들 중 가장 긴 편에 속하지만 모성을 보호하는 직장문화가 아직 정립돼 있지 않다”며 “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개선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고용부는 25일부터 31일까지 ‘남녀고용평등 강조기간’을 맞아 기업 문화와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릴레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남녀고용평등과 일·생활 균형에 관한 문구를 적어 소셜미디어에 올린 뒤 다음 주자를 지목하는 방식이다.

이 장관은 22일 ‘남녀차별은 없고 일·생활은 균형되는 사람중심 일터로!’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인증샷’을 찍은 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을 다음 주자로 지목했다.

고용부 이현옥 여성고용정책과장은 “정부와 국회가 제도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문화와 인식이 변해야 한다”며 “많은 시민이 캠페인에 참여해 문화와 인식이 조금이라도 바뀌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
#배달의 민족#우아한 형제들#워라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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