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플 설치했더니 2700만 원 뜯겨…탈북 주부까지 울린 보이스피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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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2월 3일 13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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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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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오전 10시 4분경 강원 춘천시에 사는 30대 북한 이탈 주부 A 씨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XXX페이로 49만6000원 승인 완료. 문의 02-XXX-XXXX’. 깜짝 놀란 A 씨가 문의처로 전화 했더니 “경찰에 신고해 주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잠시 후 발신번호 ‘02-112’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렇게 시작된 보이스피싱으로 A 씨는 전 재산과 다름없는 2700만 원을 뜯겼다. A 씨는 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이 자신에게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경찰과 검찰, 금융감독위원회까지 사칭한 여러 명 보이스피싱범들의 치밀한 연기에 한점의 의심조차 없었고 오히려 자신이 범죄에 연루된 것은 아닌지 불안에 떨면서 돈을 건넸다.

전화를 건 경찰은 자신을 사이버수사대 김 형사라고 밝혔다. 그는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니 휴대전화 통신사와 거래 은행을 알려주면 계좌추적을 해야 할 것 같다”며 “안전을 위해 휴대전화에 보안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라”고 말했다. 나중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는 휴대전화를 원격조정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보이스피싱범들은 A 씨 휴대전화에 담긴 모든 것을 손금 보듯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는 또 “다른 사건과 연결돼 세탁한 돈이 A 씨 명의 통장에 이체된 것으로 포착돼 검찰이 수사중”이라며 “검찰청 민원전화 1301로 전화해 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이 번호는 대검찰청 대표 전화번호여서 A 씨는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었다.

A 씨가 전화를 걸었더니 담당검사라는 다른 보이스피싱범과 연결됐다. 그는 A 씨가 연루됐다는 사건번호를 알려줬고 휴대전화로 보내는 아이핀 주소를 열어보라고 권했다. 따라했더니 A 씨 이름으로 된 사건기록부가 나왔다. A 씨가 연루된 사건의 범인 가운데 3명은 이미 체포됐다고도 말했다. A 씨의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이어 실제 가입한 한 보험사에서 ‘보험료 납입 계좌가 XX은행으로 변경됐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다음 날 오전 7시 40분경 A 씨는 검사라고 사칭한 보이스피싱범에게 전화로 이를 알리자 그는 “금융감독원에서 계좌 추적을 해야 하니 XX은행에 가서 인터넷뱅킹을 신청할 것과 해당 은행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그는 보안카드 번호와 공인인증서 번호까지 누르라고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직접 수사관을 보내겠다고 말했다. 범죄자들이 돈 세탁을 하려고 하는 돈 2700만 원이 A 씨 통장에 있으니 피해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수사관에게 직접 건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절대 이 사건에 대해 제3자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고, 발설시엔 법적책임을 져야한다며 겁을 주었다.

결국 A 씨는 자신을 찾아온 검찰 수사관이라는 20대 남성에게 돈을 주었다. 그가 들고 온 금융감독위 서류에 사인까지 해 주었다. 이후에도 며칠 동안 두려움에 떨던 A 씨는 주위에 이 일을 말했고, 모두들 보이스피싱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A 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수사에 착수한 춘천경찰서는 A 씨에게 돈을 받아간 남성이 다른 보이스피싱 사건과 관련해 서울에서 체포돼 구속 수감 중인 것을 알았다. 이 남성을 상대로 조사를 했지만 조직의 최말단인 수금원이었을 뿐 몸통에 대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

A 씨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자신의 사연을 올려 2일부터 청원이 시작됐다. 3일 오전 10시 반 현재 280명이 동의했다. A 씨는 ”북한 이탈주민으로 자녀 둘을 키우고 있는 가정주부입니다. 그런 저에게 죽음을 선택하고 싶은 만큼의 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도움을 받고 싶어도 너무 모르는 것이 많다보니 억울하고 잠도 못자고 죽고 싶은 심정입니다. 존경하는 대통령님, 경찰청장님 도와주세요“라고 적었다.

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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