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는 결국 나의 문제”… 학생-시민들 자발적 참여 늘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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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기후회의 정상회의’ 맞춰 청소년 500여명 광화문서 피켓시위
플라스틱컵 줍기-일회용품 줄이기 등 사회봉사 직접 참여하는 가족 늘어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을 찾은 청소년들이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지난달 27일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을 찾은 청소년들이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사람들은 기후변화가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해요. 당장 내일 우리 집에 불이 나서 모두 타 버릴 수 있다는 것처럼 생각하고 대응해야 하는데요.”

경기 용인시 용인외대부고 2학년 허수민 양(17)은 지난달 27일 학교로 가는 대신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을 찾았다.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기후회의 정상회의에 맞춰 열린 ‘기후를 위한 결석시위’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날 허 양을 비롯한 청소년 500여 명은 ‘지구가 녹고 있어요’ ‘우리도 2050년에 봄을 보고 싶어요’ 같은 문구를 쓴 종이상자 피켓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했다.

기후변화 문제를 지적하며 ‘등교거부 운동’을 펼쳐 세상의 주목을 끈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16)처럼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환경운동을 전업으로 선택하지 않지만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기회가 될 때마다 관련 행사에 참가하며 소신을 피력하는 형태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 문제는 같은 10대인 툰베리에게 자극을 받은 청소년의 참여도가 높다. 27일 결석 시위에 나온 청소년들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국제사회 흐름에도 관심이 많았다. 김승현 양(16·용인외대부고 1학년)은 “이번 유엔 기후정상회의는 과거의 데이터와 생각만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국은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5억3600만 t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이 목표와 실행방식이 안이하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청소년들은 환경문제가 결국 ‘나의 문제’란 인식에서 관심을 행동으로 옮기게 됐다고 한다. 대안학교인 성미산학교 2학년 오연재 양(17)은 “기후변화는 나의 미래”라며 “정부가 우리의 미래를 좀 더 고민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30여 명의 친구와 시위에 함께 온 이재원 군(12)도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이 사라지는 것이 싫다”며 “사람들에게 더 이상 지구를 나쁘게 만들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어 참석했다”고 했다.

이동근 서울대 조경·지구시스템공학부 교수는 “기후변화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여기는 젊은 세대가 늘어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더 과감한 정책이 나오는 데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이슈에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는 환경단체들이 주관한 ‘플라스틱컵 줍깅’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줍깅은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을 말한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선 플라스틱컵
을 주운 시민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선 플라스틱컵 을 주운 시민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이날 행사에는 환경 운동가들뿐 아니라 일회용품 줄이기 문제에 관심이 많은 시민 54명도 참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 주변 지인들의 권유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1시간 정도 홍익대 인근에서 플라스틱컵 1253개를 주웠다. 컵홀더나 빨대, 뚜껑 등을 제외한 숫자인데도 상당한 양이다.

남편과 7세 딸, 6세 아들과 함께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강민희 씨(34)는 환경 활동가들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식을 접하고 노원구에서 마포구로 왔다. “주말이라 가족 나들이하는 셈 치고 왔다”는 강 씨는 “키즈카페도 좋지만 아이들에게 더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강 씨는 평소에도 장바구니를 이용하는 등 불필요한 일회용품 줄이기에 관심이 많다.

“음료가 남은 채 버려진 컵이 정말 많아 놀랐다”는 박미룡 씨(60)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골목 담벼락 위, 전봇대 아래 종이상자 등에 수북하게 쌓인 일회용 컵과 컵홀더, 빨대를 일일이 골라내 한가득 비닐봉투에 담은 그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 필요성을 실감하게 됐다고 했다. 박 씨는 “일회용 컵을 반납할 때 보증금을 되돌려주는 건 산발적으로 버려지던 일회용 컵을 한데 모으는 인센티브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가끔 주말에 시간을 내 일회용 컵 줄이기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이성화 씨(26)는 “처음 참여하기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막상 한 번 해보면 환경에 대한 인식과 생활이 확 바뀐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를 준비한 서울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시민들은 환경을 보호하는 데 동참할 준비가 돼 있다”며 “일회용 컵 보증금제도 도입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에 이제는 정치권이 응답해야 할 차례”라고 밝혔다.

강은지 kej09@donga.com·사지원 기자
#환경문제#재활용쓰레기#기후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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