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택지지구 12곳중 쓰레기장 갖춘 곳은 1곳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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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개발지역 살펴보니… 폐기물처리장 설치 의무화 안돼
주민 반대로 공사 중단사례 많아… 기존 시설로 몰려 쓰레기대란 우려

“아이들이 끔찍한 유해물질에 노출된다고 생각하니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폐기물처리장 이전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2013년 하반기 경기 하남시와 시의회 홈페이지에는 이런 민원이 수십 건 올라왔다. 당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수도권에 택지지구 조성 계획을 세우면서 폐기물처리시설을 설치하려 하자 인근 주민들이 반발한 것이다. 하남시는 “해당 지방자치단체들과 자체적으로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답변했다. 결국 그해 12월 폐기물처리시설 설치 방안은 무산됐다. 이후 조성이 완료된 이 택지지구에서는 생활쓰레기를 해당 지자체별로 다른 종량제 봉투에 담아 각자 수거해 처리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각종 도시 개발로 대규모 주거지역은 늘어나는데 폐기물처리시설은 제자리걸음이다.

문진국 자유한국당 의원이 환경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LH가 지난 5년간 전국에서 개발한 면적 30만 m² 이상의 택지는 12곳이다. 이 개발지역 가운데 폐기물처리시설(소각장 및 음식물처리시설)을 설치한 것은 2015년 경기 화성시의 음식물처리시설 한 곳뿐이었다.

폐기물처리시설을 반드시 택지개발지역에 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 지원 등에 관한 법률(폐기물시설촉진법)’에 따르면 30만 m² 이상의 택지 개발의 경우 폐기물처리시설 설치 대신 처리 비용을 해당 지자체에 낼 수 있도록 했다. LH 관계자는 “폐기물처리시설을 설치할지는 지자체와 협의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규모 택지를 조성하면서 폐기물처리시설을 만들지 않는 경우 생활폐기물은 기존 처리시설에 몰리게 된다. 인구가 늘면서 생활폐기물도 많아지면 기존 처리시설의 처리 용량은 부족해지고 처리 비용도 올라간다. 결국 불법폐기물 방치 사태 같은 ‘쓰레기 대란’이 발생할 우려가 커진다.

문제는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주민들은 환경 문제와 가족의 안전, 집값 하락 등을 염려하며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에 반발한다. 지자체장들도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에 미온적이다. 선출직 단체장들이 주민 눈치를 보지 않고 시설 설치에 적극 나서기를 기대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한 기초단체 관계자는 “폐기물처리시설 설치 검토 승인이 나도 ‘설치 반대’ 민원이 들어오면 모든 과정이 중단된다”며 “주민을 설득할 길을 찾기보다는 ‘국토교통부의 결정일 뿐 우리 뜻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둘러댄 뒤 설치 백지화 방향으로 간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폐기물처리시설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 의원은 지난달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단지나 택지를 개발할 때 폐기물처리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폐기물처리촉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환경부는 올 4월 갈등조정팀을 만들어 폐기물처리시설을 둘러싼 갈등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갈등조정팀은 이해당사자들의 관심사를 알아보고 갈등 원인과 핵심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갈등학회에 연구를 의뢰했다.

법적인 설치 의무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김미화 자원순환사회연대 이사장은 “지자체는 더 적극적으로 폐기물처리시설의 안전을 담보해야 한다”며 “이와 함께 주민의 불안과 우려에 귀를 기울이고 소통해 폐기물처리시설 설치를 설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택지지구#폐기물처리시설#설치 반대#쓰레기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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