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 공개금지’ 논란…“장관의 감찰권, 수사 외압 악용 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6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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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형사사건 비공개 원칙에 관한 훈령 제정을 추진해 왔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초안으로서 법무부는 검찰, 대법원, 대한변호사협회 등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입니다.”

법무부는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피의자의 피의사실 공개를 원칙적으로 가로막는 규칙을 신설하는 훈령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16일 이 같은 입장을 내놓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 수사와 훈령 제정 추진이 무관하다며 ‘선긋기’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선 훈령이 기존 규정과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데다 악용될 소지가 있어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 “장관의 감찰권, 수사 외압 악용 소지”

훈령 초안의 핵심은 법무부 장관이 피의사실 공표를 이유로 일선 검사에 대해 직접 감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 신설됐다는 것이다.

2010년 4월부터 시행 중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엔 법무부 장관이 직접 피의사실을 공개한 검사를 감찰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수사사건의 내용을 공개한 자가 있을 때에는 각급 검찰청의 장은 즉시 검찰총장에게 보고한 후 감찰을 실시해 공개 경위, 내용, 이유 등을 조사해야 한다”며 검찰총장의 감찰권만 명시했다.

그러나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권고로 법무부가 마련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는 “법무부 소속 공무원이 위반행위를 한 경우에는 법무부장관은 감찰관 등으로 하여금 감찰을 실시해 공개 경위, 내용, 이유 등을 조사하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 장관의 검사에 대한 직접 감찰권을 허용한 것이다.

검사에 대한 법무부장관의 직접 감찰은 수사 외압으로 비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억제되어 왔다. 검사로 재직하던 시절 피의사실 공표를 처음으로 공론화화고, 경찰의 피의사실공표 혐의에 대해 관련자들을 입건해 조사했던 송인택 전 울산지검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상대편의 피의사실이 공개되면 박수치고, 내편의 피의사실을 공개되면 날뛰는 현재 한국 정치 상황에선 법무부 장관의 감찰권은 악용될 소지가 너무 많다. 장관의 감찰권은 검찰에 대한 수사 외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현행 법무부 감찰규정과도 충돌

기존 ‘법무부 감찰 규정’과 훈령 초안이 상충할 수 있다는 것도 논란거리다. 2005년 9월부터 시행 중인 법무부 감찰 규정은 “검찰의 자체 감찰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검찰청 소속 공무원에 대한 비위조사와 수사사무에 대한 감사는 검찰의 자체 감찰 후 2차적으로 감찰을 수행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법무부의 검사에 대한 직접 감찰은 검찰총장 정도로 제한해왔다. 법무부 장관이 앞장서 현직 검사에 대한 감찰에 나서는 것은 혼외자 의혹에 휩싸인 채동욱 전 검찰총장 정도로 그 사례를 찾기도 쉽지 않다. 검찰의 자체 감찰로는 공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예외적인 경우에만 법무부가 보완적, 보충적으로 감찰을 한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무부 감찰 규정의 대원칙은 장관은 일선 검사의 감찰을 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조 장관이 오히려 법무부 감찰 규정을 공격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사회적 관심이 집중된 사항 등에 한해 법무부장관이 1차적으로 감찰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예외조항’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그동안 감찰규정의 예외조항을 활용한 적은 드물다. 검찰 내부에선 “조 장관이 감찰권을 행사하면 검찰과 법무부의 전쟁이 시작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이 때문에 형법 126조에 피의사실공표죄가 이미 존재하는 만큼 판례를 쌓아 피의사실 공개로 인한 문제점들을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호재기자 hoho@donga.com

#피의사실 공개#인권보호#법무부 감찰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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