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선 기자의 영화와 영원히]한국영화, 암탉이 울어야 흥하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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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10년 공백이 무색한 장준환 감독의 녹슬지 않은 연출력 때문이 아니다. 주인공 화이 역의 여진구 때문이다.

열여섯인 여진구는 나이를 의심케 한다. 안정된 발성과 연기력으로 성인 배우보다 더 잘한다. 그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뒤 끓어오르는 분노를 응축해 내뱉는 비명소리. 이 장면에서 여진구는 비명소리만으로도 영화가 패스하고 지나간 그의 과거를 관객의 머리에 스쳐가게 한다. 어쩌면 비명도 그렇게 잘 지르는지, 백 마디 대사보다 비명 한 번이 더 효과적이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의 그의 연기를 찾아보고 싶어졌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서 김수현의 바보 연기도 ‘7번방의 선물’에 나온 선배 류승룡보다 낫다. ‘늑대소년’의 송중기, ‘완득이’의 유아인, ‘건축학 개론’의 이제훈…. 한국 영화계에는 미래가 창창한 젊은 남자 배우들이 화수분처럼 쏟아지고 있다.

반면 여배우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올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중 눈에 띄는 주연급 여배우는 ‘감시자들’의 한효주, ‘감기’의 수애 정도다. ‘베를린’의 전지현, ‘관상’의 김혜수는 조연에 가깝다. 연기력에 외모까지 갖춘 새 얼굴의 여배우를 본 게 언제였나 싶다.

여자 원톱(단독 주연) 영화는 당분간 힘들어 보인다. 올해 최강희를 원톱으로 내세운 ‘미나 문방구’는 33만 명을 불러 모으는 데 그쳤다. 톡톡 튀는 개성에 라디오 DJ로 각광받은 최강희도 흥행 파워는 없었다.

스릴러, 액션물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영화에서 여배우의 활용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관객층이 이전처럼 20, 30대 여성에 머물지 않고 장년층으로 확대됐다. 영화관에 남자들의 발걸음도 이전보다 잦아졌다. ‘여배우 빼고 만들기’ 풍토가 개선되어야 할 이유다.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하지원 강예원 손가인, 여배우 세 명이 주인공인 ‘조선미녀삼총사’(사진)가 촬영을 끝내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는 여성 액션 영화다. 엄정화 조민수 문소리가 중년 여성의 성과 사랑을 얘기하는 ‘관능의 법칙’도 제작 중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1억 원이 걸린 대상을 탄 작품이라 기대가 크다. ‘칸의 여왕’ 전도연은 이병헌과 ‘협녀: 칼의 기억’을 촬영 중이다.

이들이 나오면 여배우 갈증이 좀 풀리려나. 암탉이 울어야 한국 영화가 풍성해진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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