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재기자의 티비夜話]배구 부활 견인차, KBS 월요일 밤 ‘비바 V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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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31일 21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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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스포츠는 전통적으로 농구와 배구가 양분해 왔다.

동계 스포츠의 꽃인 이 양대 스포츠는 '공을 사용하는 실내 스포츠'라는 점을 빼고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닌다. 농구는 치열한 몸싸움과 작렬하는 역전 3점 슛이 매력이라면, 배구는 상대편과 아무런 접촉 없이도 시속 100㎞를 넘는 빠른 공을 주고받으며 종국엔 코트에 내려 꽂는 파워가 일품이다.

배구는 1970~80년대에 인기가 높았다면 농구는 1990년대 급상승한 대중성을 바탕으로 빠르게 프로전환에 성공하는 기민함을 보여 왔다. 그러나 이제 두 스포츠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 돼 버렸다.

겨울 스포츠의 판도는 미디어의 발전에 따라 급속히 글로벌화 됐기 때문이다. 이미 스포츠팬들은 유럽에서 생생하게 전해오는 EPL을 비롯한 축구 뉴스와 김연아가 등장하는 피겨스케이팅, 심지어 미국 NBA 성적에 열광한다. 더 이상 초라한 국내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에 목 맬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겨울 스포츠의 꽃인 프로배구는 최근 십 수년간 침체 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겨울 스포츠의 꽃인 프로배구는 최근 십 수년간 침체 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프로 스포츠의 성장은 미디어의 뒷받침 있어야

필자는 농구보다는 배구 팬에 가깝다. 그 이유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꼭 이유를 들어야 한다면, '고등학교에서 배구를 배웠고, 고등학교 동기 가운데 신진식 선수가 있었다…' 정도가 될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체육관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 신진식 선수를 직접 목격했다는 점은 농구보다는 상대적 비인기 종목인 배구 팬을 해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됐다. TV화면으로만 볼 수 있었던 90년대 배구 스타인 이상열, 임도헌, 김세진 등의 스타플레이어를 고등학교 체육관에서부터 지켜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스포츠란 가까이서 지켜볼수록 더욱 매력적이고, 자주 볼수록 그 이해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코트 안과 밖의 생생한 스타들의 진면목을 지켜보고, 그 땀과 투쟁의 진정성을 알게 된다면 그 스포츠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배구가 그간 인기가 없었던 까닭은 자주 볼 수 없었던 매체적 한계도 한몫했다.

한 가지 스포츠가 대중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힘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TV의 힘은 가히 절대적이다. 축구와 야구의 흥행 성공은 단연 TV수상기 보급이 절대적이었고, 그 시청률과 연동된 광고 판매에 따라 스포츠스타의 몸값 역시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침체기를 맞이한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의 중흥을 위해서는 국내 방송사들의 전략적 투자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 프로배구 중흥에 팔을 걷어붙인 공영방송 KBS의 공은 적지 않다고 하겠다. 올해 스포츠 채널 'KBS N'은 프로배구 전 경기를 중계하고 지상파도 10여 차례 중계할 예정이다.

LIG의 김요한 선수. 그는 배구계가 오래 기다려온 신세대 스타다. 그러나 그런 그도 TV에서 보지 못하면 평범한 운동선수에 불과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LIG의 김요한 선수. 그는 배구계가 오래 기다려온 신세대 스타다. 그러나 그런 그도 TV에서 보지 못하면 평범한 운동선수에 불과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 비바 V리그, 국내 겨울스포츠를 위한 최선의 투자

특히 월요일 밤 12시30분에 방송되는 '비바 V리그'는 전 경기 녹화에서 비롯되는 공영방송의 저력과 한국 스포츠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당초 이 시간은 축구 프로그램인 '비바 K리그'가 방영되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농구 프로그램인 '비바 점프볼'이 방영되고 있었다(여름에는 축구-겨울에는 농구). 때문에 K리그가 종료되고 '비바 V리그'가 첫 방송된 2009년 12월14일은 배구 팬들에게는 큰 복음이었고, 반대로 농구 팬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을듯 싶다.

배구란 스포츠를 집중 조명하는 국내 TV프로그램의 탄생은 사상 최초에 가깝다. 예전에는 김세진이나 신진식 선수를 보기 위해서는 종합스포츠 프로그램 한 귀퉁이를 주시해야 했다면, '비바 K리그'가 생긴 이후에는 신세대 배구스타인 '김요한' 선수와 '한선수' 선수를 프로그램 메인 요리로 즐길 수 있게 됐다.

그 뿐만이 아니다. 1980년대 추억의 명승부인 고려증권과 현대자동차와의 일전이나, 상대적으로 왜소하게 다뤄졌던 여자 프로배구 선수들의 동정까지도 속속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됐다. 배구의 중흥을 위해 이 보다 더한 투자가 또 어디 있을까.

불행하게도 지난 10년간 배구는 늦은 프로 전향으로 인해 침체 일로를 걸어왔다. 한발 앞서간 프로농구가 이미 5년 전에 100만 팬의 고지를 달성했지만, 프로배구는 이제야 40만을 목표로 삼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한국 프로배구를 지켜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팩트'가 존재한다. 충분히 재미있고 살 떨리는 순위 경쟁이 프로야구 못지않게 치열하다는 점. EPL에 루니와 드록바가 있다면 V리그에도 박철우와 김요한이 존재한다는 것.

농구 팬들에게는 살짝 죄송하지만 프로배구가 살아야 프로농구도 부활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한국 프로스포츠가 동반상승할 수 있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이 점을 KBS가 실천해 준 점이 배구팬의 입장에서 고맙다.

#결정적 장면

1월30일 오후 천안 유관순 체육관에서 벌어진 현대캐피탈(스카이워커스)과 LIG손해보험(그레이터스)의 4라운드 경기는 근래 치러진 한국 프로배구 사상 가장 접전이었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닐 정도의 명승부였다. 승차 없이 3위와 4위를 달리던 양 팀은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양보 없는 경기를 펼쳤고, 그 결과 5세트 접전 끝에 현대캐피털이 극적인 역전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날 경기가 더 뜻 깊었던 까닭은 토요일 오후 3시라는 황금시간에도 불구하고 KBS1TV에서 생중계를 해줬다는 사실. 배구 중흥을 위한 공영방송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그 노력은 채 3시간이 가지 못했다. 한창 5세트가 진행되는 도중 LIG가 앞선 상황에서 중계는 정규방송 관계상 중도에 끊어졌다. 이날 경기는 박철우 선수(현대캐피털)가 한국 프로배구 남자부 최다득점 신기록(50점)을 세운 날이기도 했다. 신기록을 세우기 직전에 방송이 그 축제를 외면해 버린 것.

결과적으로 KBS는 흥을 돋우다 판을 깨어버린 꼴이 됐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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