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재기자의 티비夜話] MBC ‘일요일일요일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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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7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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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적 예능'이란 여전히 유효할까?
시청률 5%는 방송가에서 애국가 시청률로 통한다. 아무거나 내보내도 채널을 고정한 시청자로 인해 그 정도는 나온다는 얘기다.

하지만 새벽시간도 아닌 황금시간대에 5%이하 시청률이란 제작진들에겐 '퇴출'이 거론되는 마지노선이다. 일요일 저녁 6시, 그것도 한동안 예능의 왕국으로 불리던 MBC에서 애국가 시청률이 나왔다.

방송계 최강의 예능브랜드인 '일요일일요일 밤에(이하 일밤)'는 명성과 달리 최근 2~3년간 바닥권 성적을 기록했다. 일밤의 시청률은 애국가보다도 못한 3% 언저리였다.

혁신 없던 '일밤'의 3%대 시청률

동시간대 경쟁자인 KBS '1박2일'과 SBS '패밀리가 떴다(패떴)'를 탓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밤'이 새로움을 주지 못해 시청자의 외면을 당연했다고 표현해야 정당하다. 그간 일밤은 적잖은 PD들을 교체했지만 그 누구도 기억 못하는 코너들의 신설과 폐지를 반복했을 뿐 시청자를 사로잡을 만한 새로운 '꺼리'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MBC 관계자는 "예능에도 일종의 사이클(주기)이 있기 때문에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며 "조만간 화려하게 일밤의 시대가 되돌아 올 것이다"고 자신했다. 경쟁 프로그램의 기세가 수그러드는 순간 혁신적인 컨셉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겠다는 말이었다.

12월6일 대대적 개편을 진행한 일밤을 진두지휘한 김영희 PD. 연합뉴스
12월6일 대대적 개편을 진행한 일밤을 진두지휘한 김영희 PD. 연합뉴스


그 시기는 찾아왔다. 경쟁자 패떴이 유재석 하차설을 비롯해 몇 가지 사소한 조작 의혹으로 위기에 빠졌고, 1박2일은 지난 3년간 한반도를 종횡무진 누빈 탓인지 소재의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드디어 MBC는 지난달 초 시청률 3%대에 그쳤던 '오빠밴드'와 '노다지'를 과감하게 폐지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 예능계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양심냉장고'의 김영희(49) PD를 다시 불러왔다. '쌀집아저씨'로 알려진 김PD의 복귀란 '사회적 예능'을 강화한다는 의미였다.

쌀집 아저씨의 제2의 양심냉장고 프로젝트?

그 첫 방송이 6일 전파를 탔다. 예상했던 대로 일밤의 새 코드명은 '공익'이었다. 화려한 MC진을 이끌고 일밤이 택한 길은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우물파기('단비') 퇴근길 아빠 맞이하기('우리 아빠'), 그리고 농민피해를 가중시키는 멧돼지 쫓아내기('헌터스') 등이었다.

전체적으로 '감동'을 큰 줄기고 삼고 최근의 트렌드인 리얼리티 컨셉을 강화해 '국내에서 하는 고생(헌터스)'+'해외에서 하는 고생(단비)'을 배치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가족간의 잔잔한 정(우리 아빠)을 두어 무게 중심을 잡았다. 따뜻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족'과 '우리사회' 그리고 '국제협력'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일밤의 야망이 배어 있는 전략이다.

성패를 논하기는 이르지만 일밤은 개편 이후 첫 방송 시청률이 8.7%로 애국가 시청률을 벗어나며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곧 일요일 예능의 3강 시대가 올 것이다"는 성급한 추측까지 나온다.

감동스러우면서도 뭔가 어색하다, 왜?

그러나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감동스럽다"는 평이 쇄도하고 있지만 "당혹스럽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공익을 예능방송의 키워드 들고 나온 것에 대한 놀라움과 당혹감이 많았다.

따지고 보면 국내에 '공익예능'이란 신조어를 탄생 시킨 것은 전적으로 일밤의 공이다.

지금도 방송가에 회자되는 혼자서 교통신호를 지킨 장애우 트럭운전사(양심냉장고)를 비롯해 저소득 가정에 집을 지어주거나(러브하우스) 시골에 어린이 도서관을 짓고(기적의 도서관) 대중이 생경하게 느끼는 문학서적을 베스트셀러에 올린(느낌표 선정도서) 프로젝트 모두 일밤이기에 가능했다.

한 동안 방송계를 휘어잡던 '공익' 컨셉의 자리를 이제는 '리얼리티'가 차지했다. 돌아온 일밤의 대부 김영희 PD는 '공익'과 '리얼리티'를 혼합한 새로운 장르 '공익 리얼리티'에 승부를 걸었다. 리얼리티의 핵심은 '슈퍼스타들의 생고생'이다. 스타들이 벌칙으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시청자들은 재미와 교훈을 느낀다.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멧돼지를 쫓아내는 목적인 ‘헌터스’.
농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멧돼지를 쫓아내는 목적인 ‘헌터스’.


그런데 '일밤'이 들고 나온 공익예능은 진짜인 척하는 리얼리티가 아니라, 진짜 리얼리티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당혹해하는 것이다.

코너 '단비'에는 탁재훈 김용만 안영미 윤두준 한지민 김현철 무려 6명의 호화 MC가 동원됐다. 그리고 잠비아의 한 마을에서 이들이 하는 일이 우물 하나 파는 일이란다.

겉으로는 '공익을 위한 생고생'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과연 그것이 진심인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진짜 아프리카에서 삽질하고 산 속을 맨몸으로 뛰어 다닌다. 시청자들이 갖는 의문은 "진짜인 것은 맞는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이다.

더 이상 시청자들은 '양심냉장고'나 '러브하우스'에 감동받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 회당 출연료가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기록하는 스타 MC들이 등장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삽질하고 농민에게 피해를 주는 멧돼지를 몰아내기 위해 거친 야생을 뛰어다닌다는 사실은 왠지 의뭉스럽다.

MBC의 MC출연료는 낱낱이 대중들에게 공개됐다. 지난해 유재석은 MBC에서만 9억5000여만원을, 출연료 수준 2위인 박명수는 8억4000만원을 받았다. 이휘재와 김구라 김제동만 해도 연간 5억원 대다.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해 삽질? 아니면 출연료를 위해?

그런데 무려 7명의 호화 MC들이 잠비아로 떠나서 우물을 판단다. 한 누리꾼은 "그 비싼 출연료 받아서 아프리카로 날아가 삽질하는 것을 진심으로 느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출연료 모아 아프리카 돕는 게 더 공익적이겠다"고 반문했다. 게다가 이미 KOICA(한국국제협력단)나 월드비전 자원봉사자 수천 명이 세계 오지에서 해오던 일을 MC가 한다고 특별히 달라질 일은 없다.

공익이라는 의도를 전면에 드러낸 나머지 의욕만 앞섰지 세련됨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KBS '1박2일'이 혁신적이었던 까닭은 그간 서울에 가려 소외된 지방을 배경으로 삼아서이지 억지 감동과 자원봉사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 아니다.

과연 공익적 예능이란 21세기도 가능할까? 그 답은 일밤이 주어야 한다. 억지 감동을 선사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공익적 버라이어티의 세계를 개척할지 말이다.

# 결정적 장면

잠비아 어린이들에게 맑은 물을 주겠다는 ‘단비‘의 한지민.
잠비아 어린이들에게 맑은 물을 주겠다는 ‘단비‘의 한지민.
일밤의 '단비' 팀이 아프리카 잠비아로 날아갔다. 최근 한국에서 화제가 된 아프리카 소년 켄트가 그곳 출신이다. 지리산고에서 수학중인 켄트는 올해 서울대 농경제학과에 합격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무려 23시간의 비행 끝에 잠비아에 도착한 7명의 MC들은 켄트의 안내를 따라 물 부족이 극심한 뭄브아로 향한다.

지독한 가뭄과 오염된 물로 고생하는 이곳 사람들에게 '단비' 멤버들은 '우물을 파라'는 미션을 부여 받는다. 이들의 차가 마을 초입으로 들어서자 주민들 수백여 명이 일제히 달려 나와 환영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MC 탁재훈이 "여러분 깨끗한 물이 필요하십니까?"라고 외치차 모두들 "그렇다"고 화답한다. 이에 한지민은 눈물을 흘렸고 평소 장난기 가득한 탁재훈 마저도 살짝 눈시울을 붉힌다. 하루 종일 땅을 파야 3000원을 번다는 아이엄마의 말에 결국 모든 MC들이 삽을 들고 우물 파기에 동참한다. 과연 '단비'는 아프리카에 몇 개의 우물을 팔 수 있을까?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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