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줌인]재탕 드라마에 밀려난 장년층 프로

  • 입력 2001년 4월 25일 18시 50분


며칠전 KBS는 봄 개편 내용을 발표했다.

KBS는 등 교양 프로그램을 앞세워 2TV의 ‘공영성 강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정작 내 눈길을 끈 것은 황금시간대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심야 시간대에서마저 밀려나 폐지된 몇몇 프로그램이었다.

<웹매거진> <마이웨이> <콘서트 초대>. 각각 월, 화, 금요일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2∼4%에 불과했다. 하지만 <콘서트 초대>의 경우 중 장년층이 즐길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폐지되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신설 프로그램도 나갈 수 있고, 무엇보다 편성은 방송사 고유 권한이다. 문제는 폐지된 시간에 무엇을 방영하는가다.

KBS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밤 12시50분부터 <앙코르 드라마>를 방영키로 했다. 제목 그대로 드라마 재방송이다.

폐지 이유는 더 황당하다. 이원군 편성국장은 23일 열린 개편설명회에서 “솔직히 말하면 제작비 절감 차원”이라고 말했다.

폐지되는 3개 심야 프로그램의 편당 제작비는 약 1500만원. 연간 21억원가량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돈들여가며 ‘경쟁력 없는’ 프로그램을 만드는니 차라리 드라마를 재방송하고 그 돈을 ‘경쟁력 있는’ 다른 프로그램에 좀 더 쏟겠다는 얘기다.

그럼, 그렇게 ‘절약한’ 제작비는 어디로 가는 걸까. KBS 예산부에 따르면 전체 제작비 중 가장 많은 예산을 가져가는 곳은 외주제작국과 드라마국이다. 외주제작국에서도 단일 프로그램으로만 따지면 드라마의 비중이 가장 크다.

드라마는 편당 제작비는 많이 들지만 기본적인 시청률이 확보되기 때문에 재방송을 해도 상대적으로 광고가 잘 붙는다. 방송 3사의 주말 낮 시간대가 온통 드라마 재탕으로 채워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가 크다.

KBS는 다음달 2일 모 호텔에서 광고주를 초청해 새 대하사극 <명성황후>의 패션쇼를 연다. 한 벌 제작비가 800만원이나 하는 황후의 화려한 의상도 선보인다고 한다.

밤 늦은 시간까지 눈비벼가며 <콘서트―초대>를 기다려왔던 시청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공영방송’ KBS에 우롱당한 느낌을 받지 않을지 모르겠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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