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한의 메디컬 리포트]온라인 진료 활짝 연 日 vs 꼭꼭 닫은 韓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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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경기 연천군 한 전방부대 장병(왼쪽)이 의무병의 도움을 받아 원격진료를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지난해 3월 경기 연천군 한 전방부대 장병(왼쪽)이 의무병의 도움을 받아 원격진료를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올해 4월 일본은 원격진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그 활용도를 넓혔다. 그리고 원격진료라는 애매모호한 용어 대신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도록 ‘온라인 진료’라는 말로 바꾸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등 만성질환자 △암 등 난치병 △모야모야병, 파킨슨병 등 특정 질환 △치매, 정신질환 등 증상이 안정된 환자는 온라인 진료 시 환자는 진료비의 30%만 부담하면 된다. 나머지는 건강보험으로 지원한다. 온라인 진료 수가는 3만 원 정도다. 일본에선 올 초 온라인 진료기관이 1600여 곳에 이른다.

단, 온라인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대상 환자는 제한이 있다. 초진은 반드시 ‘대면진료’를 해야 한다. 또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대면진료를 한 뒤 7개월째부터 온라인 진료가 가능하다. 의사가 환자에 대해 충분히 안 뒤 온라인 진료를 시작하도록 한 것이다. 또 온라인 진료 시 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면 20∼30분 내에 대면진료를 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도록 했다. 온라인 진료는 대면진료의 보조적 수단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일본은 이 같은 철저한 관리 속에서 온라인 진료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인 포켓닥터나 클리닉스 등이 활성화돼 있다. 병원에서 초진을 받은 환자는 앱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 진료를 받을 수 있다. 현재 두 곳에만 의료기관 1150여 곳이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30년 전인 1988년에 이미 시범사업으로 서울대병원과 경기 연천보건소 간에 원격진료를 했다. 이후 2002년 의료법 개정으로 의사-의료인 간 원격진료 제도가 도입됐다. 하지만 의사와 환자 간의 원격진료는 안전성과 의료 영리화 논란 등으로 진척된 게 없다.

최근에야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도서·벽지 주민 △격오지 군부대 장병 △원양선박 선원 △교정시설 재소자 등 대면진료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운 경우에 한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21년 전인 1997년 이미 낙도 및 산간벽지를 대상으로 온라인 진료를 시작했다.

최근 여야는 원격진료 확대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여전히 강경한 입장이다. 직접 보지 않고 진료하면 오진이 많아지고,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해진다는 이유에서다. 그 대신 의협은 도서·벽지에는 노인 인구가 많으므로 의사의 방문 진료와 병원선 운영, 응급헬기 지원 등을 활성화하자고 주장한다. 교정시설이나 군부대는 이미 상주하는 의료인을 통해 의료인 간 원격진료를 활용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최근 한국은 일본보다 7년 빨리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라 과거 급성감염성 질환에서 이제는 만성퇴행성 질환이 대세다. 노인 재택 케어 환자나 요양병원 요양원 등 요양 서비스를 받는 환자도 늘고 있다. 몸이 불편해 매번 병·의원을 찾는 게 쉽지 않은 환자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환자가 병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의료진이 환자를 찾아가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의협이 주장하는 왕진 개념만으로는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받기 힘든 환자들이 너무 많다. 또 헬기나 병원선 운영에는 유지비용이 많이 든다. 도서·벽지까지 의사들의 방문 진료가 활성화될지도 의문이다.

물론 의협의 주장처럼 우리나라에선 원격진료의 안전성 여부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환자를 하루 100명은 봐야 돈을 버는 병원 수익 구조도 손봐야 한다.

하지만 일본의 사례를 보더라도 ‘초진 대면진료’를 원칙으로 하면 원격진료의 안정성 문제를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다. 온라인 진료의 활성화가 반드시 대형병원 쏠림 현상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일본은 개업한 의사들이 평소 왕진이나 전화 상담 등을 통해 동네 주치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는 주치의 개념 자체가 약한 게 현실이다.

원격진료에 대한 정부의 노력과 의협의 주장은 모두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 얼마든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병원 이용이 쉽지 않은 환자가 왕진이든, 방문 간호든, 온라인 진료든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옵션을 주는 일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온라인 진료#원격진료#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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