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트렌드/최고야]‘황금 알 낳는 거위’ 조련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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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서울의 한 면세점.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서울의 한 면세점.
최고야 산업부 기자
최고야 산업부 기자
 이른바 ‘서울시내 면세점 3차 대전’이 17일 막을 내렸다. 관세청은 입찰 참여 대기업 5곳 가운데 롯데, 현대, 신세계의 손을 들어 줬다. 승자가 누가 됐든 후폭풍은 예견된 일이었다. 검찰이 면세점 로비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의 반대에도 강행한 심사였기 때문이다.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논란과 더불어 특허제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해부터 세 차례에 걸쳐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진행해온 정부의 면세점 정책은 아쉬움을 남긴 부분이 상당히 많다. 면세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근본적인 실패 원인을 따져보니 대략 이렇다.

 우선 정책에 일관성이 없었던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관세청은 지난해 12월만 해도 “서울시내에 추가 사업자 공고를 낼 의사가 전혀 없다”는 공식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올해 2월 갑자기 입장을 번복하고 신규사업자 선정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11월 두 번째로 진행된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마지막으로 알고 사업 계획을 짰던 면세점 운영 업체들은 혼란에 빠졌다.

 관세청이 지난해 1월 “지역별 외국인 관광객 증가 추이를 고려해 2년에 한 번씩 신규 입찰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던 방침과도 어긋난다. 관세청은 지난해 7월 신규 사업자 선정 이후 7개월 만에 추가 선정 계획을 발표했다. 관세청이 급격히 제도 운영 방향을 바꾼 것에 대해서는 현재 검찰에서 로비 의혹과 관련해 수사 중인 만큼 향후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혀내야 한다.

 관광정책과 연계한 종합적인 전략이 없었던 것도 문제다.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면세점은 관광정책과 발맞춰 진행돼야 한다. 하지만 관세청은 심사에 몸이 단 대기업들이 경쟁적으로 내놓는 관광 활성화 대책을 뒷짐 지고 바라보기만 했다. 특히 지방 면세점을 통해 지역 균형발전을 이루겠다던 관세청에서 관광정책 주무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지금까지 어떤 정책적 고민을 했는지 묻고 싶다.

 면세점 심사가 끝난 뒤 사후 관리도 소홀했다. 입찰 참여 업체들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해도 이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한 업체는 지역 주민 우선 채용을 공약했다가 사업권을 따낸 후 지역사회 시민단체와 어정쩡한 일자리 업무협약을 맺고 흐지부지 일을 끝내버렸다. 하지만 이를 감시하고 바로잡을 주체는 없었다.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중기 면세점은 외면받았다. 현행 관세법은 대기업 독과점을 해소하고 중소·중견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에서 2013년 개정됐다. 하지만 면세점은 태생부터 대규모 자본을 가진 대기업에 유리한 업태다. 우선 많이 사서 가격을 낮춰야 한다. 물건을 전부 매입해서 장사해야 하는 만큼 재고 부담도 전적으로 떠안아야 한다. 관세청은 대기업 면세점보다 취급 수수료를 낮춰주고 특허기간 10년을 보장해 줬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시장에서 살아남았을 때 받을 수 있는 혜택이다. 중기 면세점 업체들은 “생존에 필요한 근본적인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저성장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유통업체들에 연간 10조 원 규모 국내 면세시장은 ‘황금 알 낳는 거위’라 불린다. 중국인 관광객 증가세가 주춤해 더 이상 황금 알을 못 낳는 시장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갈수록 내수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 유통업체들은 황금 알 아니라 은(銀), 동(銅) 정도의 알만 낳아줘도 감지덕지인 상황이다. 기업들이 간절한 만큼 허가권을 손에 쥔 정부는 그동안 절대 ‘갑(甲)’ 역할만 했다. 세 차례 심사를 거치면서 시행착오를 겪은 만큼 이제는 황금 알 낳는 거위를 제대로 조련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최고야 산업부 기자 best@donga.com
#면세점 3차 대전#면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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