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의 실록한의학]〈59〉삼경이 넘어서도 잠들지 못한 숙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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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인(측백나무 열매).
백자인(측백나무 열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침수불안(寢睡不安)’

승정원일기와 실록은 임금이 잠 못 이룰 때 증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승정원일기에만 침수라는 단어가 2만7210회 나온다. 조선 임금들의 수면장애가 극심했다는 얘기다. 한방에선 머리가 뜨거우면 불면증에 잘 걸린다고 본다. 열대야가 계속되면 쉽게 잠을 못 자는 이치와 같다. 숙종은 조선 임금 중에서도 가장 열이 많은 체질이었다. 재위 30년에는 “삼경(지금의 오후 11시∼오전 1시)이 넘어서도 잠들지 못하고 3시간밖에 자지 못해 지속적인 처방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트라우마로 평생 고생했던 정조도 열이 많은 체질이었다. 역시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불면증의 대표적 한방 치료제는 귀비탕이다. 현기증, 불안감, 가슴 두근거림을 동반한 불면증 치료에 쓴다. 잦은 야뇨로 인한 불면에는 청심연자음이라는 처방을, 위장이 허약해 신경증과 불면에 시달리는 이에겐 온담탕을, 혈관장애를 수반한 노인의 불면에는 조구등이 포함된 조등산이라는 처방을 쓴다. 하지만 이 처방들은 먹으면 바로 잠이 오는 수면제는 아니다.

산조인(酸棗仁)은 드라마 대장금에도 나온 유명한 수면제다. 수청을 강요하는 중국 사신을 잠재운 그 약재다. 본초강목에는 “사람이 누우면 피는 간으로 간다. 피가 안정되지 못하여 누워도 간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놀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자지 못한다”고 나와 있다. 산조인은 신맛으로 혈액을 간으로 수렴해 수면장애를 치료한다.

백자인(측백나무의 열매)이라는 약재도 수면에 도움을 준다. 측백의 백은 한자로 ‘柏’이라 쓴다. ‘육조잡서’라는 옛 문헌에는 “나무는 보통 햇빛을 향하는데 측백만은 서쪽을 향한다. 이에 따라 서쪽을 뜻하는 색인 ‘白’을 나무 목자에 붙여 ‘柏’자가 되었다”고 해석했다. 측백나무는 흥분을 진정시키고 열을 내려 심장에 혈액을 보충하고 ‘꿀잠’을 선사한다.

공자는 잠을 자는 자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잘 때는 구부리는 것이 좋고 깨어서는 펴는 것이 좋다.” 똑바로 누워 손을 모은 자세는 죽었을 때 염하는 모습과 같아 가위눌림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부부가 서로 등을 맞대고 벽을 보고 자다 보면 싸움을 할 때가 있다. 만약 의식하지 않고 나도 모르게 벽을 향해 잠을 잔다면 몸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마음이 아니라 몸이 약해져서 그런 것이므로 건강을 점검해볼 일이다.

수면 리듬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몸은 잠들지 않아도 일정한 시간에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휴식을 취한다. 잠이 오지 않아도 일정한 시간에 잠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느린 걸음은 뇌에 집중된 기운을 발로 내린다. 다리를 움직이면 피가 다리근육에서 활발해지며 머리를 맑게 한다. 하루 한 시간씩은 반드시 걷는 것이 좋다.

호흡법도 좋다. 가늘고 길게 내쉬는 숨은 부교감신경이 작용하는 것으로 잠을 잘 오게 한다. 천천히 내쉬는 연습을 자주 하면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불면증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38도 내외의 물에 10분 정도 몸을 담그거나 족욕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백자인#측백나무#불면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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