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최고의 의술]말기 뇌종양 60대 환자에 첫 맞춤형 ‘아바타 치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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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현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사업단장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사업단에는 암 환자 4148명의 세포와 조직이 저장돼 있다. 남도현 단장이 미래 맞춤형 암 치료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 저장장치를 점검하고 있다.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사업단에는 암 환자 4148명의 세포와 조직이 저장돼 있다. 남도현 단장이 미래 맞춤형 암 치료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 저장장치를 점검하고 있다. 홍진환기자 jean@donga.com
대부분의 의사들은 자신이 살리지 못한 환자를 애써 잊고 싶어 한다. 자칫 트라우마로 남을 경우 마음에 큰 짐이 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남도현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사업단장(신경외과 교수)은 지금은 고인이 된 조한선(가명) 씨를 매일 기억하고 또 기억한다. 언젠가는 악성 뇌종양 같은 난치암도 인간의 의술로 완치시킬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확신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2013년 12월 당시 65세 여성인 조 씨의 머리에서 종양 여러 개가 발견됐다. 그것도 치료가 가장 어렵다는 악성 종양인 교모세포종 뇌종양이었다. 교모세포종 환자의 평균 생존 기간은 14개월 남짓. 2년 이상 생존율은 약 20%. 합병증이 많고 수술로 종양을 제거해도 재발이 쉽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조 씨는 종양이 이미 뇌 중앙까지 퍼져 말기에 해당됐다. 대화가 쉽지 않을 정도로 의식도 흐릿했다. 남 교수는 “보통의 뇌종양 환자처럼 치료해서는 백전백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보호자에게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 아바타 시스템을 처음 가동

남 교수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그저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치료법을 동원하겠다’는 다짐이었다.

남 교수는 보건복지부 지원 속에 난치암 정복을 위해 환자 맞춤형 치료를 연구해 왔다. 그 결과 환자의 암 덩어리를 쥐에게 주입해 환자와 몸 상태가 비슷한 ‘아바타 마우스’를 만들어, 여러 항암제들을 사전에 시험해 보는 아바타 스캔 시스템을 구축했다. 환자의 유전체(세포 조직) 정보가 쌓이는 경우일수록 특정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 특별히 잘 듣는 항암제 정보가 축적되는 시스템이다. 2013년 당시는 암 환자 30명의 유전체 정보만이 저장된 상황으로 초기 단계였다.

남 교수는 일단 응급수술을 통해 조 씨의 머리에서 지름이 3cm 이상인 종양 3개를 먼저 제거했다. 그리고 아바타 시스템을 가동시켜 4주 만에 오른쪽 뇌에서 제거한 암 덩어리에 특히 효능이 있는 항암제 3개를 찾아냈다.

문제는 3가지 항암제 모두 폐암 환자에게만 승인된 약이었다. 뇌종양 환자에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긴급 허가를 받아 임상시험 형태로만 약을 투입해야 한다. ‘환자에게 이 약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남 교수의 요청에 공감한 식약처는 사용을 허가했지만, 다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약을 투입해서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약의 이미지만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 제약사들이 약 제공을 꺼렸기 때문이다. 남 교수의 설득 끝에 다국적 제약사 B사가 고가의 폐암용 항암제를 제공하기로 했다.

○ 뇌종양 환자에게 폐암용 항암제 투여

2014년 1월부터 드디어 아바타 시스템을 통해 찾아낸 개인 맞춤형 항암제가 국내에서 최초로 환자에게 투입됐다. 조 씨의 종양은 B사의 폐암 환자용 항암제를 투입한 후 7개월 동안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환자의 의식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 씨의 암 덩어리들은 종양마다 유전적 특징이 달랐다. 아바타 시스템을 통해 찾아낸 B사의 항암제는 오른쪽 종양에는 큰 효과가 있었지만, 왼쪽 종양에는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남 교수는 “당시 왼쪽 종양에도 효과가 있는 약을 아바타 시스템을 통해 찾아냈지만, 약을 제공하는 제약사를 찾지 못했다”며 “맞춤형 치료에 대한 데이터가 조금만 더 축적됐어도 제약사를 설득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한이 된다”고 말했다.

조 씨는 올해 1월 결국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가족들은 남 교수를 원망하지 않았다. 조 씨의 남편은 “보통 뇌종양 환자들은 의식 없이 지내다 간다는데, 아내는 비교적 편안하게 지내다 갔다. 그래도 삶을 정리할 기회를 얻은 것 같다”며 감사해했다.

현재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사업단에는 난치암 환자 4148명의 유전체 정보(암 조직, 세포)가 저장돼 있다. 물론 조 씨의 유전체 정보도 들어 있다. 이 중 573명은 아바타 스캔을 통해 유전체 정보에 맞는 맞춤형 항암제 정보를 얻어냈다. 앞으로 이들과 비슷한 유전체 정보를 갖고 있는 암 환자들은 맞춤형 약을 쉽게 얻어낼 수 있다. 아바타 시스템은 뇌종양 환자뿐 아니라 폐암, 췌장암, 재발된 위암 환자들에게까지 적용되고 있다. 미국(MD앤더슨 암센터), 싱가포르, 사우디아라비아 등 세계 난치암 환자의 유전체 정보를 공동으로 수집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질환별로 1000케이스 정도가 축적되는 2020년 이후에는 개인 맞춤형 항암치료가 보편화될 것으로 보인다. 남 교수는 “조 씨는 이런 정밀의료가 현실에서 시도된 첫 환자”라며 “조 씨와 같은 환자들의 정보가 차곡차곡 쌓여 난치암 극복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인 모를 두통 지속, 시야 좁아지면 뇌종양 검진 필요▼

뇌에 발생하는 암, 이른바 뇌종양은 성인과 소아를 가리지 않고 전 연령대에서 발생한다. 여전히 다른 암에 비해 치료가 어려운 암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뇌종양 수술법이 예전에 비해 발전하면서 치료 성적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종양이 양성인 경우에는 조기 발견 후 적절한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으면 합병증 없이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뇌종양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 발견이라고 입을 모은다. 원인을 알기 힘든 두통이 이어지거나, 시야가 좁아지거나, 청각·후각 기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등 뇌종양의 전조 증상이 있다는 것.
남도현 삼성서울병원 난치암사업단장(신경외과 교수)은 “뇌종양인데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으로 착각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거나, 냄새를 잘 못 맡아 이비인후과를 가는 환자들이 있다”며 “해당 과에서 특별한 진단을 받지 못할 경우 신경외과를 찾아 혹시 모를 뇌종양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뇌종양#아바타#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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