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은 살아있다]<5>글로벌에서 글로컬로

  • 입력 2009년 1월 24일 02시 56분


“지역-개인의 가치 더 중요” 세계화의 진화

《미국 뉴욕에서 1인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B 씨의 비서는 멀고도 먼 인도 벵갈루루에 살고 있는 인도인이다. 퇴근길 비서에게 다음 날 사용할 경쟁 입찰 자료와 연설 원고를 준비하도록 메시지를 보냈다. 이튿날 새벽 B 씨의 컴퓨터에 원했던 자료가 e메일로 쏙 들어와 있다. 교통사고를 당한 환자 A 씨는 응급조치에 이어 컴퓨터단층촬영(CT)을 받았다. 화면파일은 호주 방사선 전문의에게 e메일로 전송된다. 5분이 채 안 돼 판독 결과가 A 씨가 입원해 있는 한국의 병원으로 전송됐다. 고급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중소 병원도 실시간으로 해외 유명 의료기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미국화’ 기존 획일성 탈피 모색

“국가와 개인, 글로벌과 로컬의 소통 활발해질 것”

○ 진화하는 세계화: 아웃소싱(outsourcing)에서 오프쇼링(offshoring)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화는 훨씬 빨라지고 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디지털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모두 값싸고 품질이 우수한 세계 각지의 공급자에게 맡길 수 있는 세상이 됐다.

‘박스에 넣어 옮길 수 있는’ 제조업에서나 가능했던 세계화가 법률 회계 금융 의료 등 지적 서비스 부문으로 전방위 확장되고 있는 것.

제조 공정의 일부를 비용이 싼 지역으로 옮기는 ‘아웃소싱형 세계화’에서 아예 모든 것을 맡기는 ‘전방위형 오프쇼링 세계화’로 진화하고 있다. 오프쇼링은 단순 외주에 머물지 않고 연구개발(R&D), 디자인까지 비교우위를 가진 해외에 직접 맡기는 것이다.

앨런 블라인더(경제학)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이를 정보통신혁명이 이끈 ‘제3의 산업혁명’에 비유한다. 1, 2차 혁명이 증기기관 발명과 생산 공정의 표준화로 제조업에 영향을 미친 데 비해 세 번째 혁명은 개인에 직접적 영향을 줬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라는 견해다.

○ 적자생존에 내몰린 세계화

미국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와 컨설팅사 AT커니의 조사에 따르면 1978∼1997년 세계 경제에 통합된 나라는 그렇지 않은 나라에 비해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30∼50% 높았다.

실제로 세계화는 합리적인 자원배분으로 부(富)의 축적을 가져왔다. 빈곤에 허덕이던 중국과 인도를 신흥대국으로 급부상시켰고 이를 통해 선진국 시민은 질이 좋으면서도 값싼 제품을 썼다.

세계화는 지금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화이트칼라, 블루칼라 할 것 없이 세계인들이 무한경쟁으로 내몰리면서 세계화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내 라이벌은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아니라 세계에 흩어져 있는 노동자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경쟁상대는 훨씬 많아졌다.

결국 개인은 더 많이 일하고 더 빨리 달리고 더 똑똑해질 것을 강요받고 있다. 값싼 임금을 쫓는 세계화 속에서 ‘어제와 같은 노동’은 곧 임금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양산되고,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 간 격차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은행(2007년)에 따르면 10년 동안 경제 불평등지수는 65에서 70으로 나빠졌다.

‘세계화 전도사’로 불리는 토머스 프리드먼(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은 “시공을 초월한 통신 혁명으로 지구가 평평해졌다”고 강조했다. 이런 시대에는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이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적용된다.

○ 도전받는 세계화

자유시장 경제의 ‘적자(適者)’로 살아남은 듯했던 세계화는 이제 ‘또 다른’ 도전 앞에 서 있다. 환경 변화에 맞춰 생존경쟁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지구촌 사회’는 한 지역의 위기를 세계적 재앙으로 확대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근원적 불안을 안고 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파생금융상품의 부실로 이어졌고 다시 글로벌 금융경색, 기업도산, 소비위축이라는 연쇄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세계화를 둘러싸고 일국(一國)중심에서 다국(多國)중심으로, 상품에서 가치로의 변이 담론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변화와 무관치 않다. 기존 세계화가 ‘글로벌 스탠더드=미국화’라는 획일적 기준을 강요하면서 지역과 문화, 개인 등 이른바 ‘로컬(지역)의 다양성’을 경시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과도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 수정을 요구하는 ‘대안적 세계화’나 인권 환경 여성 등 비자본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공유하자는 ‘인간의 얼굴을 한 세계화’, 미국 등 선진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들의 편협성을 지적하는 ‘공평한 글로벌리제이션’ 담론이 그것들이다.

파라그 카나 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저서(제2세계)에서 “세계화는 여러 세기에 걸친 진화의 징표로 생존과 진보를 위한 하나의 전략”이라면서 “문제는 세계화의 지속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공석기(사회학) 선임연구원은 “지금까지 세계화는 경제적 통합에 치우친 ‘위로부터의 세계화’라는 성격이 강했다”면서 “최근 환경 인권 빈곤 등 인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세계화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와세다(早稻田)대 고등연구소 김태균(국제정치) 교수는 “세계화의 진화 방향은 국가와 개인, 글로벌과 로컬이 서로 타협하고 소통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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