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은 살아있다]<2> 미국 정치계의 최대 변이, 오바마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월 12일 02시 58분



다윈의 진화가 오바마를 만들고, 미국의 진화가 그를 택했다



《“오바마의 당선은 인종 차별로 가득했던 미국 역사의 ‘진화’에 있어 주목해야 할 상징적인 순간이다.”(뉴욕타임스 2008년 11월 5일자)

“백인들이 ‘흑인도 인간이냐’고 했던 시대로부터 우리는 진화했다.”(로스앤젤레스타임스 11월 6일 칼럼 ‘2008 대선, 유권자의 진화를 보여주다’)》

다원화된 美사회의 ‘변이’… 레볼루션 아닌 에볼루션

흑백 모두의 삶 받아들이는 적응능력으로 적자생존

탈인종-이념 ‘통합 유전자’ 다음세대 확산될지 촉각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민주당 후보가 제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미국 매스컴에는 ‘진화(evolution)’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백인과 기독교가 주류를 이뤄온 미국 사회에서,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고 후세인이라는 이슬람식 이름을 가진 그는 ‘다윈식 변이(variation)’였고, 그 변이가 적자생존을 거쳐 세계 문명사에서 획기적인 전기를 이룬 사실을 평가하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자신의 성장과정에서 터득한 ‘진화의 원리’를 통해 새로운 정치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흑백과 좌우의 구분을 깨뜨리는 통합의 리더십이 그것이다. 미국 사회에서 ‘진화의 결과’로 탄생했다고 평가받는 그의 ‘진화 실험’이 과연 세대 유전을 통해 지속 가능할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 다윈이 승인한 오바마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론으로 설명하면 오바마 당선인은 미국 사회의 환경 변화에 따라 등장한 변이다. 그동안 미국 사회에서 주류를 이룬 인물의 평균치와 다르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당선을 전후해 진화생물학자인 조너선 아이슨(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쓴 ‘다윈, 오바마를 승인하다’는 글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됐다. 그는 “미국 선거를 관심 깊게 지켜본 다윈이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오바마를 가장 분명한 선택이라고 여겼다”며 “미국인들은 진화를 구체화할 수 있는 강한 후보가 필요했고, 이 점에서 오바마가 자연선택됐다”고 썼다.

페니얼 조지프 브랜다이스대 교수도 오바마 후보의 당선에 대해 “미국 민주주의를 확장해서 생각한 마틴 루서 킹의 개념이 성공적으로 진화한 결과”라고 말했다. 손병권 중앙대(국제관계학) 교수도 “오바마는 인종과 신앙의 문제에 있어서 미국 사회가 좀 더 다원화되는 시기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레볼루션(혁명)이 아니라 에볼루션(진화)”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당선인이 정적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의원, 공화당 소속인 로버츠 게이츠 현 국방장관을 중용하면서 당파와 인종을 초월한 인선을 한 것에 대해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통합의 유전형질’이 세대를 넘어 유전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링컨은 대선 때 공화당내 경선 경쟁자였던 윌리엄 헨리 수어드를 국무장관에 기용했고, 케네디도 대통령에 당선되자 국무 국방 재무장관에 자신의 진보적 색채를 보완할 수 있는 보수 인물을 기용했다.

○ 오바마의 삶이 적자생존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다윈 이후’(사이언스북스)에서 “자연선택은 반드시 적자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세대를 거듭해 광범위한 변이 중에서 선호되는 부분만을 선택해 보전시킴으로서 생물 종(種)으로 하여금 단계적으로 적응 능력을 축적하도록 한다”고 말한다.

오바마의 삶도 미국 사회의 적자로 선택받기 위한 적응 능력을 축적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의 장점인 ‘통합을 이끄는 힘’이 그 적응능력이다.

백인인 외조부모 슬하에서 사춘기를 보낸 그는 집에서는 백인, 밖에서는 흑인이었다. 정체성 혼란으로 인해 술과 마약에 손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컬럼비아대를 거쳐 하버드대 로스쿨에 진학하면서 통합을 모색하는 능력, 즉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받아들여지는 생존방식을 터득했다. 이는 그가 흑백 세계 모두를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적응 능력을 키우며 사회 경쟁에서 적자(適者)로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의 적응력은 정치 세계에서도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2004년 7월 존 케리 대선후보를 지원하는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그는 “진보적인 미국과 보수적인 미국, 검은 미국과 하얀 미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통합의 메시지로 주목받았다. 인종 편견, 좌우 논리에서 벗어나려는 환경(미국 사회)의 변화에 기대되는 ‘적자’로 떠오른 것이다.

○ 오바마의 시대정신은 유전이 될까

다윈은 수많은 자연변이가 모두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생존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특성을 가진 개체가 살아남는 적자생존을 거친다고 했다. 진화생물학자 마이클 셔머는 ‘왜 다윈이 중요한가’(바다출판사)에서 “자연선택은 유기체들이 살아남아 번식해 자기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퍼뜨리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적자생존’의 전형을 보여준 오바마가 이제 ‘탈인종 사회’ ‘통합과 화합의 사회’라는 유전형질(정치철학과 시대정신)을 다음 세대로 넘길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그 유전형질이 곧장 다음 세대로 이어질지, 세대를 건너뛰어 유전될지, 아니면 당대에 그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오바마 변이의 또 다른 생존경쟁은 인종과 종교, 이념 갈등, 빈부격차 등 여러 차원의 세포분열이 대기한 가운데 현재 가장 뜨거운 경제 문제에서 시작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안병진 경희사이버대(미국학) 교수는 “오바마의 시대정신(유전형질)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일단 경제를 안정화 궤도에 올려놓는 일이 급선무”라고 했다.

리처드 도킨스는 저서 ‘눈먼 시계공’(사이언스북스)에서 자연선택론과 관련해 “자연선택은 눈먼 시계공이다. 눈이 멀었기 때문에 선택을 결코 예측하지 못하고 결과를 계획하지 못하고 목표를 설계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도킨스의 말대로 ‘오바마 변이’가 이제 또다시 벌이고 있는 생존경쟁의 결과는 아무도 장담하기 어렵다. 그 경쟁은 20일 취임식과 더불어 시작된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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