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고 되고 싶은 2005 과학기술인]<1>신희섭 KIST 책임연구원

  • 입력 2005년 9월 2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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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생쥐와 씨름하며 인간 뇌의 비밀을 캐고 있는 신희섭 박사. 사진 제공 사진작가 김연정
평생 생쥐와 씨름하며 인간 뇌의 비밀을 캐고 있는 신희섭 박사. 사진 제공 사진작가 김연정
《동아일보사와 동아사이언스 그리고 한국과학문화재단은 과학기술부 후원으로 제4회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10인을 선정해 지난달 31일 기념행사를 가졌다. 2002년부터 선정된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은 청소년에게 21세기 과학기술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보람과 비전을 제시해 왔다. 2일부터 이들 10인이 걸어온 성공과 역경의 스토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10회에 걸쳐 ‘Plus 과학’면에 연재한다.》

“뇌는 우리 몸을 멋대로 조종하고 있습니다. 뇌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죠. 아닌가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희섭(55) 책임연구원은 ‘뇌 박사’로 통한다. 2003년은 그에게 ‘기적의 해’였다. 한 해에 3편의 논문을 ‘네이처’, ‘사이언스’ 등 세계적 학술지에 싣는 기염을 토했다.

○ “내 유일한 환자는 생쥐였다”

생체리듬을 알려주는 ‘생체시계’의 작동 과정을 처음 밝혀냈고, 유전자를 조작해 ‘똑똑한 쥐’를 만드는 데 성공했으며, 통증을 감소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는 유전자와 통증억제 메커니즘도 알아냈다.

덕분에 유난히 상복이 많았다. 지난해 ‘호암상 과학상’ ‘듀폰 과학기술상’ ‘이달의 과학기술자상’ ‘KIST인 대상’ 등 큰상을 휩쓸었다. 상금만도 2억 원이 넘는다. 올해는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까지 거머쥐었다.

“모두 생쥐 덕분이죠.”

그가 뇌과학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할 무렵이었다. 어느 날 회진 중 아픈 환자를 대하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니 진심으로 그 아픔을 동감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이때 그는 깨달았다. 자신에게는 의사가 생계수단은 될 수 있겠지만 천직은 아니겠다고.

이때부터 그의 유일한 ‘환자’는 생쥐였다. 의사라는 ‘달콤한’ 직업을 버리고 생쥐의 뇌와 씨름을 시작했다.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관장하는 뇌는 항상 궁금했던 분야였다.

유전자를 조작해 돌연변이 생쥐 한 마리를 만드는 데 꼬박 2년이 걸린다. 궁금한 내용은 산더미지만 ‘칼자루’를 쥔 것은 돌연변이 생쥐. 생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조작한 유전자의 역할을 확인할 수 있다. 신 박사는 벌써 14년째 그 일을 되풀이하고 있다.

“즐기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2001년 포항공대 교수를 그만두고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도 이 즐거움을 한껏 누리기 위해서였다. 정년이 더 길고 월급도 더 많은 자리를 스스로 관두다니. 사람들은 ‘외도(外道)’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도(正道)’였다. 연구에 더욱 집중할 수 있고 공동연구를 하기에 편리한 것이 즐기기 위한 최우선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 똑똑함은 타고 나지 않는다

그는 3년 전부터 요가에 빠져있다. 그에게는 요가도 뇌 연구의 연장이다. 요가를 하면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움직이게 되고 이때 뇌에 자극이 가해진다. 그래서 그는 요가를 “뇌에 힘을 주는 운동”이라고 부른다.

음악과 미술도 마찬가지. 요가가 육신을 움직여 뇌를 자극한다면 음악을 듣고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 생기는 예술적 감흥은 마음을 움직여 뇌를 자극한다.

그의 연구실 한쪽에는 음악 CD가 수십 장 꽂혀 있다. 집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수백 장이 넘는다. 한국의 전통음악부터 바흐 같은 클래식까지 음악은 가리지 않고 즐긴다. 초보 수준이지만 직접 알토 색소폰을 불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록 가수 전인권의 콘서트에도 다녀왔다. 붓과 캔버스 대신 마우스와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서양화가 김점선 씨와도 친분이 있다.

그가 이렇게 부지런히 자신의 뇌를 단련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똑똑한 생쥐는 미로를 금방 빠져나와요. 하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릴 뿐 보통 생쥐도 결국에는 미로에서 길 찾기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계속 훈련을 시키면 걸리는 시간은 차츰 줄어들어 똑똑한 생쥐와 차이가 없어지죠.”

타고난 것보다 노력으로 얻는 것이 훨씬 더 크다고 강조하는 신 박사. 그는 오늘도 뇌의 미로에서 출구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 기자 uneasy75@donga.com

:신희섭 박사는:

1950년 경기 의왕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생 때 성적이 평균 100점이었을 정도로 ‘극단적 모범생’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이 신화는 깨졌다. 처음 받은 성적은 반에서 중간 정도. 괴로웠지만 방황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1968년 서울대 의대에 입학했지만 뇌 해부를 가르쳤던 성기준 교수의 뒤를 이을 생각으로 의사의 길을 접고 유학길에 올랐다. 1985년부터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1991년 포항공대 생명과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연구의 즐거움을 좇아 2001년 KIST 생체과학연구부 책임연구원으로 다시 한번 자리를 옮겼다.

:청소년에게 한마디:

자신이 좋아하고 재미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라.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끝까지 시험해보라. 노력하는 만큼 얼마든지 인생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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