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은 2004과학기술인]<6>코캄엔지니어링 홍지준 대표

  • 입력 2004년 5월 18일 17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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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폴리머전지로 대한민국의 과학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한 홍 대표는 틈틈이 우리 문화 알리기에도 열심이다.-사진작가 박창민
리튬폴리머전지로 대한민국의 과학기술력을 세계에 과시한 홍 대표는 틈틈이 우리 문화 알리기에도 열심이다.-사진작가 박창민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 박정희 대통령 귀하’.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가 3장이 넘는 장문의 편지를 대통령 앞으로 보낸 지 2주일도 채 안돼 청와대 비서관이 학교로 찾아왔다.

“홍지준 학생이 누구지?”

지금은 리튬폴리머전지로 세계 시장에 우뚝 선 코캄엔지니어링 홍지준 대표(48)의 당돌한 어린 시절 기억이다. 당시 텃밭에 무허가로 집을 지었다는 이유로 구청에서 집을 허물자 이에 분개한 홍 대표는 당장 연필을 들고 대통령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독립운동가였어요. 동생은 전투기 조종사였고요.”

그의 당찬 기질은 이런 투사 집안 내력을 이은 것이었다. 애국심도 똑같았다.

“아버지나 동생과는 달리 나는 사업을 하는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우리나라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늘 생각해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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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비즈니스맨이 애국하는 길은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피하지 않고 부닥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997년 외환위기가 한국을 강타해 투자가 줄고 회사들이 문을 닫을 때 그는 거꾸로 전 재산을 투자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코캄표’ 리튬폴리머전지였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홍 대표가 전공을 살려 리튬폴리머전지로 승부수를 띄우기까지는 무려 20여년 이상 걸렸다.

“코카콜라 페트병이 제 첫 작품입니다.”

1979년 대학졸업 후 화학회사의 신규사업부에 입사한 그에게 떨어진 과제는 그동안 산업용으로만 사용되던 재료(폴리에스테르)를 식품 및 음료용으로 개발하는 일이었다. 아무 기본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그는 꼬박 3년을 연구 개발에 매달렸다. 1981년 국내 최초로 음료용 플라스틱 페트병이 등장해 큰 인기를 얻었고, 그는 거금 200만원을 개발 특상으로 받았다.

하지만 홍 대표는 새로운 도전거리를 찾았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로 무대를 옮겨 자신의 전공이나 경력과 전혀 상관없는 반도체 회로 공정관리를 맡아 화학엔지니어에서 정보기술(IT)엔지니어로 변신했다. 2년 후 이번에는 독일계 회사에서 연매출 300억원을 기록하는 세일즈맨이 됐다.

카멜레온 같은 그의 변신에는 이유가 있었다. 제일 어렵고 새로운 일이 아니면 투사의 ‘전투력’과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

리튬폴리머전지를 개발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국내 대기업들도 수천억원의 돈을 들여 몇 년 동안 상용화하려고 연구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주변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반대로 그의 투지는 불타올랐다. 전지의 기본 정의부터 따졌다. 평소 시를 쓰면서 당연시되는 것들에 대해 의심하는 버릇이 몸에 밴 그의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이 스쳐갔다. 전지를 꼭 기존 방식으로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 것.

그는 전지의 구조를 바꾸기로 결론 내렸다. 대개 리튬폴리머전지는 리튬이온전지에 비해 용량과 에너지 밀도가 낮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그는 리튬이온전지보다 에너지 밀도가 30% 가량 높고, 용량도 100배 이상 되는 새로운 방식의 리튬폴리머전지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 1997년 개발에 뛰어든 뒤 4년 만의 성과였다. 그의 뚝심과 고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과학기술인의 참된 보람은 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는 데 있습니다.”

코캄의 전지로 인해 이미 초소형비행체 시장은 엔진과 연료통을 버리고 전지를 선택했다. 코캄 전지가 전세계 시장의 70%를 장악했다. 초소형전지뿐 아니라 최근에는 미국과 독일에서 전기자동차와 보트에 사용되는 대형전지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대한민국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홍 대표는 리튬폴리머전지로 애국의 꿈을 이룬 셈이다.

이현경 동아사이언스기자 uneasy75@donga.com

▼홍지준 대표는▼

1956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지하 서가와 중고교 도서관에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다. 중학교 때 주역과 운명철학을 공부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대학입시 공부 대신 철학 논문을 썼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러시아의 거장 도스토예프스키의 위대함에 압도당해 자신의 문학적 자질에 대해 좌절하고 다른 진로를 모색했다. 어려운 가정환경 탓에 부자가 되고자 생각했던 그는 자연과학을 전공한 뒤 새로운 것을 개발해 자신만의 창조적인 세계를 만들 수밖에 없다고 결론내리고 1974년 서울대 화학교육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화학엔지니어에서 IT엔지니어, 세일즈맨을 거쳐 회사를 창업했다. 2000년 시집 ‘혀와 이빨’을 출판한 아마추어 시인이기도 하다. 한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남달라 틈틈이 한국고대사와 미학을 공부하고, 외국 출장길에 만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열심히 알린다.

▼청소년에게 한마디▼

책을 많이 읽고 생각하는 습관을 가져라. 새로운 기술 개발의 아이디어를 얻고 숲을 보는 시각을 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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