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겐 지적-정서적 샘터… 어르신에겐 치유의 공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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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2> 부천 ‘도란도란작은도서관’

경기 부천시 고리울로 ‘도란도란작은도서관’의 인문학 독서 모임 ‘도서화풍’ 회원들이 11월 21일 도서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천=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경기 부천시 고리울로 ‘도란도란작은도서관’의 인문학 독서 모임 ‘도서화풍’ 회원들이 11월 21일 도서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부천=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옛날 옛날 고리울에 곰달래 서낭당이 있었어요. ‘곰달래’라는 이름처럼 고운 달빛이 맑게 비치는 동네 길을 따라 어떤 날은 아이가 와서 소원을 빌고….”

경기 부천시 고강동에 사는 어린이가 동네 당산나무를 소재로 쓴 글이다. ‘도란도란작은도서관’(부천시 고리울로)이 기획 발간한 ‘고리송이 고리산이야! 고강동을 지켜줘’에 실렸다. 책에는 아이들이 마을의 역사를 공부하고 창작한 이야기가 담겼다. 도서관에는 이처럼 지역 주민들이 지역과 이웃,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모은 서가가 따로 있다.

현대 도시인이 갖지 못한 ‘뿌리’를 새로 만들 수 있는 바탕은 역사와 이웃일 것이다. 지난달 16일 방문한 도란도란작은도서관은 단독주택과 빌라가 밀집한 고강동에서 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엮고 뿌리를 만드는 공간이 되고 있었다.

도서관은 칠순 노인과 아홉 살 아이가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다. “여름에 벌이 도서관에 들어와 무서워하던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달래줬더니, 이제는 내가 책 보고 있으면 아이가 뒤에서 툭툭 쳐요. 자기 왔다고.” 인문학 도서를 탐독하던 권혁수 씨(69)의 말이다.

이 도서관은 2002년 부천시의 공립 1호 작은도서관으로 고강종합사회복지관에 문을 열었다. 도서관보다 먼저 생긴 아동문학 학습동아리 ‘작은소리’ 회원들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줬다. 그 아이들이 이제 성인이 됐다. 그중 한 사람인 박효준 씨(25)는 “대학생이 된 지금에서야 느끼지만 도서관은 나에게 또 하나의 가족과 같았다”며 “지식뿐 아니라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도서관 선생님들로부터 배웠다”고 말했다. 이 도서관은 2008년 KB국민은행과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도움으로 리모델링을 했다.

도란도란작은도서관은 시니어그룹에는 치유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제야 철없는 딸이 아버지 앞에 용서를 구합니다. 얼마나 힘드셨어요….” 도서관이 엮은 책 ‘우리들의 마음일기’에 주민 김복순 씨(63)가 쓴 글이다. 김 씨는 올봄 도서관의 치유 글쓰기 과정에 참여하면서 아버지에 관한 글, 자신의 가상 장례식 추도사 등을 썼다. 김 씨는 “옛 기억을 불러와 글을 쓰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서운했던 마음을 치유할 수 있었고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어린이 대상 독서 철학 역사교실, 환경 동물보호 교육, 진로 체험, 성인 대상 인문학 강좌, 작가와의 만남을 비롯해 해마다 40개 이상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02년부터 17년째 사서로 일하며 열정적으로 도서관 일을 맡아 온 윤정애 씨(50)는 “도서관 운영자와 주민은 함께 공부하며 성장하는 동반자”라고 했다.

부천시는 공립 작은도서관도 21개로 많고 운영도 활발하다. 부천시가 작은도서관에 전문 사서 배치를 원칙으로 한 게 효과를 냈다는 분석이다. 2019년 정부의 ‘생활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으로 새로 태어날 전국 200여 개 작은도서관의 운영에도 귀감이 될 만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도서관#부천#도란도란작은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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