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22회…셔플 XⅥ 탑 또는 신의 집 (1)

  • 입력 2004년 3월 10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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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날이 밝습니다.

비도 그친 것 같습니다.

어제는 저녁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1초마다 빗발이 세지는 듯 했습니다. 나카노 공장의 지붕은 양철이라서, 한참 쏟아질 때는 마치 북을 두드리듯 빗소리가 울립니다. 투두두둥 투두둥 투두둥. 이 곳에서는 무슨 할 얘기가 있으면 상대방의 귀에다 대고 소곤거려야 하는데, 어젯밤에는 귀에다 입을 바짝 갖다대어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깊은 밤이었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잠든 지 오래지 않았으니까, 아마 자정 전후였을 겁니다. 끼익 하는 소리가 나면서 공장 문이 열렸습니다. 권총을 든 남자들이 들어왔습니다. 사찰계나 CIC, 둘 중에 하나였겠죠.

이름을 부르는데 빗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찰계는 우리를 벽 앞에 세우고,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얼굴 앞에서 이름을 불렀습니다. 강만재! 네! 김기정! 네!…나는 얼굴만 비춰보고는, 박난영! 하고 옆에 있는 아주머니로 건너뛰었습니다. 네! 불린 순서대로 새끼줄로 재갈을 물리고, 엄지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을 모아 철삿줄로 꽁꽁 묶었습니다.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빗속으로 끌려나가 대형 트럭에 태워졌습니다. 남은 사람은 여자가 여섯 명, 남자가 두 명…모두 여덟 명뿐입니다. 함께 끌려온 오빠의 모습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내 여덟 번째 오빠, 김덕봉…여섯 살 위니까, 스물 셋입니다.

죽습니다. 아니 벌써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디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는지…, 쇠고리에 줄줄이 엮어 생매장을 당하느니, 구멍을 파라 해놓고 총살을 시키느니 온갖 소문이 떠돌지만 사실을 아는 것은 경관뿐, 그러나 경관에게 물을 수는 없습니다.

용봉, 봉기, 구봉, 세 오빠는 어느 날 경찰서에 끌려간 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A, B, C, 죄상을 삼단계로 선별한다고 합니다. B, C는 삼문동에 있는 나카노 공장과 가곡동 동포 수용소로 연행되는데, 석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A는 경찰서에 연행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후에 사살 당한다는 소문입니다. 무사히 도망친 것은 여섯 번째 봉철 오빠뿐입니다. 아버지가 살짝 가르쳐주었는데, 부산항에서 일하는 인부들 사이에 섞여 있다고 합니다.

글 유미리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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