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19회…셔플 X 운명의 고리 (6)

  • 입력 2004년 3월 7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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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용 선수하고는 방공 감시소 시절에도 같이 있었죠.”

“아…방공 감시소….”

“일주일에 한 번 아침 8시에서 다음날 아침 8시까지 방공 감시소에 근무하면, 현지 징용으로 간주되어 징병이 면제된다고 해서….”

“그렇게 해서 스무살의 건장한 청년이 정말 징병을 면제받을 수 있을까 하고 반신반의했었어. 그러다 중국의 제13사단에라도 배속되면 조선 의용대를 이끌고 항일운동을 하는 자네 사촌하고 맞붙어 싸우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 말이야….”

“1년만 더 전쟁이 계속되었으면, 소집 영장이 나왔겠죠…두 시간씩 교대로 근무하는데, 아저씨는 나를 그냥 자게 놔두었죠. 퍼뜩 눈을 뜨면 아침인 적도 있었어요. 둘이 밤새워 얘기를 나눈 적도 있었고…아니 아저씨는 내 얘기를 잘 들어 주셨어요. 과거와 현재는 무시하고 미래만 떠들어대는 철없는 풋내기의 얘기를….”

“아아, 기억하고말고. 자네는 올림픽 옆에 있는 이와다 의원에 다녔었지. 대학에 갈 돈이 없어서 검정고시를 봐 의사가 되겠다면서 말이야.”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면 농담으로 절 웃겨 주셨어요. 옛날부터 농담을 던져 놓고는, 염소처럼 히죽 웃었죠. 아, 죄송합니다, 하하하하.”

“아닐세, 아니야. 하하하…쌍안경을 열심히 들여다보지만 보이는 것은 별뿐, B29는 한 대도 나타나지 않았지…동감이야…그 시절엔 평화로웠어…미래를 얘기할 수 있었으니까…지금은 미래는커녕 과거도…현재도 얘기할 수가 없으니…그때는 아무 것도 흔들리지 않았고, 모든 것의 윤곽이 선명했지…지금은…모든 게 다 뒤틀려 있고…뭐가 뭔지 알 수가 없어…전혀 알 수가 없어….”

나이든 죄수는 복근운동을 그치고 무릎을 가슴에 댄 채 날카로운 눈초리로 달을 쳐다보았다.

“…아저씨하고는, 둘이서 밤하늘을 올려다볼 인연인가 봐요…6년 전에는 방공 감시소에서…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내일 죽어나갈 신세일지도 모르는데….”

젊은 죄수는 답답한 심정을 호소하듯 울적한 눈길로 달을 올려다보다가, 후 후 후 하고 소리 내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글 유미리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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