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718>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3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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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노래를 마친 패왕이 다시 술 한 잔을 들이켠 뒤, 뒷날 해하가(垓下歌)로 불리게 된 그 노래를 한 번 더 되풀이했다. 노래를 마친 패왕의 두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번쩍이며 흘러내렸다. 춤을 추던 우 미인도 울며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곁에서 시중들던 사람들과 무슨 일로 군막에 들었던 장수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며 차마 패왕을 바로 쳐다보지 못하였다.

온 군막 안이 소리 죽여 울고 있는데 패왕이 다시 한번 상처받은 호랑이가 울부짖듯 해하가를 읊조렸다. 그때 갑자기 춤을 멈춘 우 미인이 자신의 노래로 해하가에 화답했다.

한나라 병졸들 이미 우리 땅을 모두 차지해 (漢兵已略地)

사방에 들리느니 초나라 노래 소리뿐이네 (四方楚歌聲)

대왕의 드높던 뜻과 기개마저 다하였으니 (大王意氣盡)

하찮은 이 몸 어찌 살기를 바랄 수 있으리 (賤妾何聊生)

노래를 마친 우 미인이 갑자기 품 안에서 시퍼런 비수 한 자루를 빼내면서 패왕에게 말하였다.

“대왕, 옛 기상 꺾이지 마시고 부디 무사히 강동으로 돌아가소서. 뒷날 반드시 흙먼지 말아 일으키며 다시 돌아오시어[권토중래] 제 죽음이 헛되게 하지 마소서.”

그러고는 그 비수로 자신의 목을 깊이 찌르고 쓰러졌다. 패왕은 일순 몸이 굳어버린 사람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그런 우 미인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미처 숨이 끊어지지 못한 우 미인의 몸이 작은 새처럼 파들거리며 고통에 떨고 있자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보검을 뽑아 한 칼로 그 숨을 끊어주고 군막을 나갔다.

군막 밖에는 남은 장졸들이 그새 모두 모여 있었다. 열사흘 달빛 아래 둘러보니 합쳐 3천도 되지 못했다. 패왕이 보검을 높이 쳐들며 나직하나 힘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들어라. 우리는 이제 강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적의 에움이 두꺼워 성하게 빠져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인을 따라가고 싶지 않으면 여기 남아 한왕에게 항복해도 좋다. 뒷날 과인이 돌아와도 결코 그 일로 너희를 나무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진채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았다. 이에 패왕은 다시 한번 달래듯 말했다.

“우리가 빠져나가는 줄 알면 적은 결코 곱게 놓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진채에 남아 우리가 빠져나갈 때까지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적을 속여주어야 한다. 거기다가 용케 이곳을 빠져나간다 해도 말이 없으면 곧 뒤따라 잡히고 만다. 말이 없는 군사들은 진채에 남아 아직 우리 대군이 남아 있는 것처럼 꾸미고 있으라.”

그리고 말 탄 8백 기(騎)만 골라 뒤를 따르게 했다. 대개가 강동에서부터 따라온 용사들이었다. 진채에 남게 된 초나라 군사들이 화톳불을 배로 하고 빈 군막마다 등불을 밝혀 형세를 위장하고 있는 사이에 패왕 항우가 이끄는 8백 기는 가만히 진채 남쪽으로 몰렸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열사흘 달이 지고 세상은 날이 새기 직전의 어둠과 고요 속에 잠겨들었다.

“가자. 지금이다. 결코 뒤돌아보지 말라. 오직 앞만 보고 내닫되, 가로막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베어 버려라. 바위라도 뚫고 가야 한다!”

패왕이 그렇게 말하며 앞서 말 배를 차자 남은 8백 기가 말없이 뒤따라, 그들은 곧 한줄기 빠르고 거센 바람처럼 남쪽으로 뛰쳐나갔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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