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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 독립운동사 발굴작업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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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중구, 독립운동사 발굴작업 활발

인천=박희제 기자 입력 2019-04-10 03:00수정 2019-04-10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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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서 터 등 김구 선생의 탈옥로 순례길로 만들어 역사교육 계획
11일 임정수립 100주년 기념식
백범이 두 차례나 투옥된 인천감리서. 현재 감리서가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인천 중구 제공
올해 상하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인천 중구가 숨겨진 관내 독립운동사 발굴 작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특히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의 행적에 초점을 두고 있다.

백범은 중구에 있던 인천감리서(仁川監理署)에 첫 번째 투옥돼 2년여를 복역했다. 김창수로 불리던 청년 시절 명성황후 시해에 분개한 그가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국모 시해에 대한 복수”라며 일본인을 살해한 것이다. 구한말 개항장(開港場)의 외국인 치안과 통상을 관리하기 위해 설치한 감리서에는 감옥이 있었다. 그의 모친 곽낙원 여사가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허드렛일을 한 곳도 감리서 바로 뒤 객주였다.

백범은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미결수 신분으로 감리서에서 복역하다 1898년 3월 19일 밤을 틈타 탈옥한다. 그러나 인천의 지리에 어두워 다음날까지 감리서 주변을 배회했다.


탈주로는 대략 북성포구 해안가∼홍예문∼중국인묘지∼미술사학자 고유섭 생가∼용동 마루터기∼답동성당∼화개동∼신흥동 등 감리서 반경 2∼3km 이내다. ‘백범일지’에는 이후 경기 부평을 거쳐 서울 양화진 나루에 도착했다고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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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투옥은 1911년 신민회 사건으로 체포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인천감리서로 이감된 1914년이다. 이때 백범은 인천항 석축을 쌓는 노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신서적을 많이 읽어 세상사에 새롭게 눈을 떴다며 인천을 정신적 고향으로 생각했던 백범은 광복 후 감리서 인근 내리교회와 인천항을 찾기도 했다.

중구는 감리서 터를 비롯해 백범의 탈옥로를 순례길로 만들어 사람들이 걸으면서 역사를 되새겨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는 날인 11일부터 자유공원에서 100주년 기념식을 연다. 국내 첫 서구식 공원인 자유공원은 감리서에서 약 2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자유공원에서는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2일 ‘한성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전국 13도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10일 국회에 흉상이 세워지는 독립운동가 홍진(1877∼1946)을 비롯한 전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은밀히 모여 임시정부 설립 방안과 헌법 초안을 논의했다. 한성임시정부는 1919년 4월 23일 서울에서 선포됐고 훗날 상하이임시정부와 통합됐다.

인천=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인천중구#독립운동사 발굴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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