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부산 전주 찍고… 들불처럼 타오른 “대한독립만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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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현장/창간 99주년]

《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은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과 민중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나갔다.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항거이자,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는 비장한 절규였다. 서울에서 시작된 3·1만세운동은 요원의 불길처럼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다.

만세운동의 절정기인 3월 하순부터 4월 초까지 전국에서 매일 50∼60회의 비폭력시위가 일어났다.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나라를 끝끝내 되찾고야 말겠다는 불굴의 정신이야말로 3·1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나게 한 힘이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독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간 구국투쟁이자 세계평화를 촉구하는 장엄한 부르짖음이었다. 》

경기도, 전국서 만세운동 가장 많이 벌어진 곳

道,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64개소 선정

지난달 1일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경기홀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행사’의 뮤지컬 공연 장면. 경기도 제공
지난달 1일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경기홀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행사’의 뮤지컬 공연 장면. 경기도 제공
100년 전 3·1만세운동의 뜨거운 기운은 서울 사대문을 넘어 경기 전역으로 바람처럼 퍼졌다. 당시 경기지역 21개 부·군 모두에서 독립을 염원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1919년 3, 4월 두 달간 일어난 만세시위는 225회, 참가인원도 연 15만 명에 이르렀다.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가장 많이 벌어졌고 참여한 사람도 가장 많은 곳이 경기였다.

경기도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유적지 알리기를 비롯해 대규모 기념사업을 펼친다. 화성 제암리순국기념관과 안성 3·1운동기념관 등을 포함하는 경기도 독립유적지여행은 올해 더욱 뜻깊다.

수원에서 남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화성 향납읍 제암리는 조상의 한(恨)과 넋이 서린 현장이다. 1919년 4월 15일 수원에 주둔하던 일본 헌병 제78연대 소속 헌병들이 제암리에 나타났다. 이들은 제암리 옆 발안마을 장터에서 열흘 전 벌어진 만세운동을 가혹하게 진압한 것을 사과하겠다며 15세 이상 남성을 교회에 모이도록 했다. 일병은 모인 남성 23명을 학살하고 교회는 불태웠다. 제암리 학살 사건이다. 당시 미국 북감리교 소속 마티 윌콕스 노블 선교사는 자신의 일기에 “교회 터에는 재와 숯처럼 까맣게 타버린 시체뿐이었다”고 참혹상을 기록했다. 이곳에 제암리순국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안성 원곡면과 양성면에서 벌어진 독립만세운동도 격렬했다. 이 지역 만세운동은 민족대표 33인의 재판에서도 평안북도 의주군, 황해도 수안군과 함께 인용될 정도였으며 ‘3·1운동 3대 실력항쟁지’로 꼽힌다. 그 원곡면에 3·1운동 기념관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양평에는 좌파적 시각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몽양 여운형의 생가가 있고 광주시에는 만해 한용운의 기념관이 있다. 김포에는 당시 희생된 애국지사의 영령을 추모하는 월곶면민 만세운동 유적비가 서 있다. 가평에는 가평의병·3·1항일운동기념비가 있다.

경기도는 제암리에서 김포 오라니 장터 만세운동 유적비까지 남북을 잇는 다크투어(dark tour·참상이 벌어진 역사적 장소 등을 돌아보는 여행) 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경기도는 이와 함께 지난해부터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가평 보납산 의병 전투지를 비롯해 만세시위가 벌어졌던 고양 일산 헌병주재소 터와 연천 두일리 장터, 남양주 헌병분견소 터, 성남 낙생면사무소 터, 평택 계두봉 등 도내 항일유적지 64개소를 선정했다. 이들 유적지에는 과거를 알리는 안내판과 바닥표지판을 설치하고 후손을 위해 보존할 계획이다.국가보훈처 경기교육청 등과 함께 64개소를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전국에 알리기로 했다.

경기도박물관에서는 6월 30일까지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특별전 ‘동무들아! 이날을 기억하느냐’를 개최한다. 상하이(上海) 임정(臨政)청사 사진들과 태극기목판각 등 독립운동사를 상징하는 전시물 100점이 소개된다.


수원시, 3·1운동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발족 항일유적지 답사-학술대회 등 추진

염태영 경기 수원시장(가운데)이 시민들과 함께 수원 방화수류정에서 3·1만세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염태영 경기 수원시장(가운데)이 시민들과 함께 수원 방화수류정에서 3·1만세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수원에서 대한독립의 길을 걷다.’

‘대장금’ ‘1박2일’ 등 한류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 촬영장소로도 유명한 화성(華城)은 경기 수원시의 중심이다. 정조대왕이 1796년 축성한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며 미국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아름다운 50곳’의 하나다. 그리고 100년 전 이곳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경기지역 최대 항일유적지로 꼽히는 수원의 화성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손병희 선생의 수행비서였던 이병헌의 ‘3·1운동비사’(1959년)에 따르면 수원의 3·1운동은 100년 전 3월 1일 화성의 북쪽 수문인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용두각) 아래에서 시작됐다. 서울과 같은 날 밤에 용두각 언덕에서 게릴라처럼 펼친 횃불 시위였다. 국상(國喪) 기간이어서 하얀 상복을 입은 성 안 상인, 성 밖 농민, 학생 등 신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백 명이 참여했다.

수원 만세운동은 민족대표 33인에 들지 않지만 지방 연락책을 맡고 독립선언서 기획에 참가한 15명을 더한 ‘민족대표 48인’의 한 명인 김세환이 계획하고 지도했다. 수원면 삼일여학교 학감이던 김세환은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킨 교육운동가였다. 천도교와 기독교 지도자들은 군중을 이끌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인 팔달산 서장대에 올랐다.

수원 3·1운동은 하루로 끝나지 않고 산발적 시위가 이어졌다. 같은 달 29일 오전 수원기생조합 기녀들이 검진을 받으러 간 자혜의원 정문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시위를 주도한 22세 김향화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유관순 열사와 함께 지냈다. 이들의 이야기는 최근 ‘항거, 유관순 이야기’라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수원 사람들은 이처럼 만세운동이 뜨거웠던 이유로 정조의 애민정신이 민족의 애국정신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조의 개혁과 백성에 대한 사랑이 담긴 화성은 100년 전 비록 성취하지는 못했지만 가슴 벅찬 역사의 현장이 됐다. 그리고 지금은 수원의 대표 관광지가 됐다.

만세운동의 현장인 화성과 방화수류정, 김세환 집터 등을 잇는 길은 걸어서 반나절이면 둘러볼 수 있는 둘레길처럼 됐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문인인 나혜석의 채취도 ‘나혜석 거리’에서 느낄 수 있다. 영화 ‘극한직업’에 등장한 수원왕갈비통닭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수원통닭거리는 덤이다.

독립의 길은 생태의 길로 변신했다. 수원시는 이 일대를 생태교통마을로 지정하고 차 없는 거리 등을 운영하고 있다. 최신 유행을 따르는 가게들도 속속 들어서면서 수원의 가장 오래된 마을은 가장 신선한 마을로 변모 중이다. 100년 전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뜨거웠을 때처럼 말이다.

수원시는 지난해 1월 출범한 ‘수원시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를 중심으로 △기념 조형물 건립 △청소년과 함께하는 대한민국 독립항쟁지 답사 △수원시민 민주평화공원(가칭) 조성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경진 기자 lkj@donga.com
#방방곡곡 3·1 그날의 함성#3·1운동 100주년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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